HBM 수요 폭증에 메모리 시장, 다시 강한 상승 국면에 진입실적의 질은 현물가격보다 장기계약 확보 여부가 가를 전망브로드컴·구글·AMD 확장 속 삼성·SK 경쟁도 한층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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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다시 강한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 다만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 다르다. 예전처럼 현물가격 급등만으로 실적이 뛰던 구조가 아니라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력과 장기공급계약 확보 여부가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이번 호황의 본질을 ‘가격 사이클’이 아니라 ‘계약 구조 전환’으로 보고 있다.

    11일 반도체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5632억달러로 전년 대비 15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DRAM은 175%, NAND는 131%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HBM 시장 규모도 2026년 58억1000만달러, 2027년 89억6000만달러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GPU(그래픽처리장치) 성능 경쟁이 이어지면서 메모리가 더 이상 보조 부품이 아니라 시스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올라섰다는 의미다.

    ◇메모리 월이 바꾼 시장 … DRAM에서 HBM으로 중심 이동

    시장 구조 변화의 출발점은 이른바 ‘메모리 월’이다. 연산 성능은 빠르게 높아지는데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는 메모리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병목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AI 연산량이 급증할수록 이 문제는 더 두드러지고, 결국 고대역폭·저지연 특성을 갖춘 HBM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수요처도 달라졌다. 과거 메모리 수요가 스마트폰과 PC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AI 데이터센터가 핵심 시장으로 떠올랐다. HBM뿐 아니라 서버용 eSSD(적층형 낸드플래시)를 중심으로 NAND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류형근 대신증권 반도체 연구원은 “AI 서버 확산과 eSSD 채택 증가에 힘입어 NAND 역시 과거와 다른 성장 궤도에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곧바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2026년 DRAM 생산량은 전년 대비 2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업계에서는 의미 있는 공급 확대 효과가 본격화하는 시점을 2027년 상반기 이후로 보고 있다. 선단공정 전환, HBM용 캐파 잠식, 패키징 병목 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는 앞서가는데 공급은 천천히 늘어나는 구조가 이어지면, 메모리 업체들의 전략은 당연히 단기 판매보다 안정적 물량 확보 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승부처는 장기계약 … SK는 엔비디아, 삼성은 HBM4로 반격

    이번 사이클의 핵심은 판매 방식 변화다. 고객사들은 이제 단기 구매보다 연간 단위 가격 계약이나 3년 안팎의 장기공급계약을 요구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단기 급등장에서 누릴 수 있는 초과이익이 줄어들 수 있지만, 대신 대규모 설비투자에 필요한 현금흐름과 물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시장 선두는 SK하이닉스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2026년 HBM 매출을 41조2000억원, 출하량을 19.2억Gb로 추정한다. HBM 매출 기준 점유율도50%를 웃도는 수준으로 거론된다.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쌓은 선점 효과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엔비디아향 HBM3e 공급 비중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어 올해와 내년 실적 가시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HBM4를 앞세워 반격에 나서는 구도다. 삼성전자의 2026년 HBM 매출은 24조원, 출하량은 11.2억Gb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각각 189%, 143%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HBM4 초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할 경우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브로드컴, 구글, AMD 등 비엔비디아 고객군이 확대되면 삼성전자에 더 유리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업계 전망에 따르면 비엔비디아 HBM 구매 비중은 2025년 35%에서 2026년 45% 안팎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브로드컴·구글 중심의 HBM4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공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엔비디아 중심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강하지만, 차기 비엔비디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파고들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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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황의 반대편에는 부담도 있다. 범용 DRAM ASP(평균판매가격)는 이미 지난 15년 상단 수준에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가격만으로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는 구간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HBM 증설에는 선단공정, 첨단 패키징, 고객 인증 등 복합적인 투자가 필요해 비용 부담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도 변수다. 중국 CXMT(창신메모리)는 DRAM, YMTC(양쯔메모리)는 NAND에서 생산능력과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아직 HBM과 최선단 메모리 영역에서는 한국 업체와 격차가 있지만, 범용 시장에서 저가 공세가 강화되면 한국 업체들은 점유율보다 수익성 방어에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할 수 있다. 

    특히 AI 수요가 강할 때는 기술 격차가 방패가 되지만, 사이클이 꺾일 경우 중국발 공급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2막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느냐"라며 "엔비디아 중심의 현재 시장을 장악한 SK하이닉스와 HBM4와 비엔비디아 고객 확대로 반격을 노리는 삼성전자의 승부도 그 지점에서 갈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