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경질되고 국민이 심판 중인데 정부가 불매 선동절제 잃은 과잉대응 … 선거 앞 '포퓰리즘적 애국주의'
  • ▲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스타벅스 앞에서 5·18 '탱크데이' 행사로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회장을 규탄하고 있는 광주·전남 시민단체 관계자들. ⓒ연합뉴스
    ▲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스타벅스 앞에서 5·18 '탱크데이' 행사로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회장을 규탄하고 있는 광주·전남 시민단체 관계자들. ⓒ연합뉴스
    말(言)과 글(書)의 무게를 망각한 대가는 참혹하다.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내놓은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마케팅 문구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1980년 광주의 눈물과 1987년 박종철 열사 사망을 상업적 도구로 소비하려 한 발상은 그 자체로 역사의식의 빈곤이자 천박함의 방증이다.

    기업이 여론의 매서운 비판과 견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순 없다. 스타벅스 경영진은 경질됐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였으며 글로벌 본사까지 나서 사과했다. 성난 민심 앞에 기업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이면서도 가장 즉각적인 대응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사태 수습 국면에 뜬금없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면에 나섰다. 윤호중 장관은 SNS를 통해 해당 기업 상품을 정부 행사에서 배제하겠다며 사실상의 '공식 불매'를 선언했다. 관가에서 경품으로 애용되던 '스벅 상품권'을 퇴출하겠다는 엄포다.

    보훈부 장관과 공무원 노조가 불매에 동참한데 이어 적잖은 지자체장들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SNS에 올린 이후 행안부 장관의 한마디가 부처와 기관, 지방정부를 타고 번지며 사실상의 관제 불매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공동체의 기억과 가치를 지키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가치를 수호하는 방식에는 선이 있고, 정부는 지금 그 선을 넘고 있다. 민간 기업을 향해 공권력의 무게로 불매를 압박하는 것은 책무가 아니라 월권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미 최고경영자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인적 쇄신까지 단행한 상황에서 추이를 지켜보면 될 것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좌표를 찍고, 장관이 매를 들고 다시 난입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보다 정치적 선명성 경쟁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불매 선동으로 스타벅스 매출이 줄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직원들의 일자리로 이어진다. 친(親)노동을 앞세우는 정부가 정작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역설이다. 국민들이 이미 자발적으로 심판하고 있고 사장도 물러났는데 6·3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두고 정부가 굳이 나서는 건 속내가 훤히 보이는 행보다.  

    정부의 공권력과 행정력은 절제될 때 비로소 권위가 선다. 법적 처벌이나 제도적 개선이 아닌 '불매'라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민간 영역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가 지녀야 할 엄정함을 무너뜨리는 악수(惡手)다. 

    이미 경찰은 고발 사건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법적 절차와 시장의 냉혹한 평가라는 두 가지 축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거친 언사와 장관의 행정적 배제 조치까지 더해지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사태를 키워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포퓰리즘적 애국주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가에선 벌써부터 "누가 감히 스타벅스 상품권을 집어들겠냐"는 말이 나온다. 공문 한 장 없이도 알아서 줄을 서는 풍경이다. 

    스타벅스의 무지함은 매섭게 꾸짖되 이를 다루는 정부의 방식은 세련되고 절제돼야 마땅하다. 지금 관가에 필요한 것은 스벅 상품권을 뺏는 호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사적 감수성을 차분하게 복원해 나가는 긴 호흡의 행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