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백악관서 공식 취임… 1987년 그린스펀 이후 처음유가 충격에 기대인플레 급등… 시장선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반영트럼프 “나 보지 말고 당신 방식대로”…금리 압박 수위는 일단 조절
  • ▲ 취임 선서 마친 케빈 워시 신임 미 연준 의장 ⓒ연합뉴스
    ▲ 취임 선서 마친 케빈 워시 신임 미 연준 의장 ⓒ연합뉴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의장이 공식 취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연준 독립성”을 강조하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지만, 워시 체제 출범 직후 연준이 마주한 현실은 금리 인하보다 인플레이션 대응에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시 의장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주재로 취임 선서를 하고 임기를 시작했다. 연준 의장 취임식이 백악관에서 열린 것은 1987년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이후 처음이다. 앞서 미 상원은 워시 의장 인준안을 통과시켰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워시 의장을 의장으로 만장일치 선출했다.

    이날 행사에는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과 공화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앙은행 수장 취임식이 백악관에서 열린 데다 정치권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시장에서는 트럼프 2기 통화정책의 색채가 더 짙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예상보다 낮았다. 그는 이날 “솔직히 진심으로 케빈이 완전히 독립적이기를 바란다”며 “나를 보지도, 누구를 보지도 말고 당신 방식대로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제롬 파월 전 의장 재임 시절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던 모습과는 다른 어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내내 파월 전 의장을 향해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금리 인하를 요구했고, 해임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워시 의장 취임 직후부터 연준 독립성 논란이 커지는 것을 의식해 일단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저금리 선호 기조를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날 “경제가 호황일 때는 이를 멈출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성장 친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겉으로는 독립성을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금리 인하 기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워시 의장도 취임사에서 연준 독립성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연준의 의무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촉진하는 것”이라며 “지혜와 명확성, 독립성, 단호함을 갖고 목표를 추구할 때 인플레이션은 낮아지고 성장은 더 견고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경직된 틀과 모델에서 벗어나겠다”며 “청렴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개혁 지향적 연준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워시 의장은 그동안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 인플레이션 분석 기준 재정비, 통화정책 소통 방식 개편 등을 주요 과제로 언급해왔다.

    문제는 취임 직후 경제 환경이다. 중동 긴장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속 에너지 가격 부담이 소비자 체감 물가를 다시 밀어올리는 모습이다.

    소비심리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44.8로 집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4.8%까지 올랐다. 고물가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둔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연준 내부 기류도 금리 인하보다는 물가 경계 쪽으로 기울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콘퍼런스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며 연준 성명에서 완화 편향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러 이사는 당장 금리 인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물가 흐름이 진정되지 않으면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연준 내부에서 긴축 경계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실제 단기금리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되기 시작했다. 당초 시장은 워시 의장 지명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감안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뒀지만, 유가 충격과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 겹치면서 전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시장 관심은 다음 달 16~17일 열리는 FOMC로 쏠린다. 워시 의장 체제의 첫 통화정책 회의인 데다 경제전망과 점도표가 함께 공개되는 자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성장 중심 저금리 기조와 연준 내부의 물가 경계론 사이에서 워시 의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달러, 미 국채금리, 글로벌 증시 흐름이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