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부담 줄이는 '역경매'… 기재부 장관 승인要매각 참여 후 권리 팔 수 있는 '할부 방식' 도입 제안도아이디어 넘치면 뭐하나… 결국 정부 의지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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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우리은행 매각 도전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금융위원장) 직을 걸고 매각을 성사시키겠다”고 단언했음에도 4차 매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정부가 5번째 도전에 나서면서 꺼내 든 카드는 ‘과점주주 매각’이다. 경영권 매각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경영권 지분 매각방식’으로 민영화를 진행하겠다고 지난해 6월 선언한 후, 투자 수요가 없음을 확인하고서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전환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대로는 우리은행 민영화가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일부만이라도 일단 팔자” 과점주주 방식 도입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 7월 21일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의 지분(51.04%) 중 30%를 과점주주 방식으로 우선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소수지분을 매각하면서 투자자에게 부여된 콜옵션 행사 대비분(2.97%)를 제외한 나머지 18.07%는 민영화에 따른 우리은행의 가치가 높아진 이후 최대한 높은 값에 팔겠단 계획이다.

    과점주주 매각 방식이란 투자자 1인당 매입 가능물량을 4~10%로 정해 총 3~8명의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이다.

    과점주주는 4~10%씩 지분을 보유한 다수의 주주들로 구성된 지배구조다. 국내에서는 신한금융지주, 해외에서는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자위와 예보는 과점주주 매각에 맞는 투자자를 찾고, 입찰방식과 1인당 매각 수량 등 매각 설계를 구체화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매각 일정은 확정하지 않았다.

    ◇ 경매 흥행 시원찮다면 ‘역경매’ 어때요

    문제는 투자 수요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국가계약법상 정부 소유 재산은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를 투자자들이 꺼리고 있다는 것.

    희망수량 경쟁입찰은 높은 가격을 제시한 투자자 순으로 각자 희망하는 물량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낙찰자가 제시한 가격대로 낙찰가가 결정돼 투자자마다 각기 다른 가격에 우리은행 지분을 사들이게 된다. ‘경매’와 유사한 방식이다.

    공자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비교적 높은 가격에 우리은행을 매각할 수 있지만, 투자자는 부담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거론되고 있는 방안이 '역경매(逆競賣)'다.

    '더치옥션(dutch auction)'이라고도 일컫는 이 방법은 매도자가 최고 호가부터 가격을 낮추다가 매수 희망자가 나오면 일괄 매도하는 방식이다.

    이를 다수가 입찰하는 우리은행 민영화에 적용할 경우, 여러 명의 매도자가 각자 제시한 입찰가중 지분이 모두 매각되는 최저 가격을 모든 수량의 최종 매각 가격으로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30%를 매각하는데 신청자 A가 2만원에 10%, B가 1만8000원에 10%, C가 1만5000원에 10%, D가 1만4000원에 10%를 접수할 경우, 30%를 충족하는 A, B, C에게 낙찰된다. 대신 이들은 모든 지분을 1만5000원에 매수하게 된다.

     

    투자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에 낙찰될 가능성도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방식은 매수 희망자가 시장 자체에서 형성된 가격을 제시하되, 자신만 비싸게 사는 위험이 없어 굳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로 인해 매각이 신속하게 진행되고 실제 매각가도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더치옥션 방식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제도적인 문제 탓에 아직 이 방식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상 경쟁 입찰을 할 수밖에 없다. 역경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재부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국민주·할부·금산분리 완화… ‘아이디어’ 넘치는데

    역경매 방식 외에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다.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는 국민주 매각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희망수량 입찰 방식이 잘 안되면 국민주로 파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국민주란 정부 혹은 정부투자기관 보유 주식을 다수의 국민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분산 매각하는 방식이다. 많은 지분을 동시에 처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이 방식으로 민영화된 기업으로는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절차가 다소 복잡하기 때문에 민영화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할부(installment receipts) 방식의 매각 방안도 거론된다

    일반적으로 매각대금의 60%를 우선 지급한 후 12~18개월의 시차를 두고 잔금을 납입하게 되는데, 첫 번째 매각과정에 참여한 투자자는 두 번째 매각과정에 참여하는 대신 그 권리를 유통시장에서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할부방식에 의한 은행 민영화’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는 과정에 있을 경우, 투자자는 배당과 유사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점이 투자자를 유인할 수 있다”며 “호주·영국·뉴질랜드·캐나다 등에서 정부지분 매각 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조속한 민영화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의 기업 사금고화 우려가 나오는데, 은행은 더 이상 정부기관의 기능을 하지 않으므로 은행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의 은행은 상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돼 왔기에 부실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재욱 교수는 ‘공적자금투입 은행의 민영화 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은 조속히 민영화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은행 소유를 자유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 파나, 못 파나… 정부 의지 ‘의문’

    문제는 학계에서 이처럼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런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대로면 매각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 이후 예정된 정치 일정 때문에 사실상 현 정부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윤석헌 교수는 “우리은행 민영화는 정부 의지의 문제”라며 “이 방식도 저 방식도 못 하겠다는 것은 팔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 민영화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서는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매각 방법으로 과점 주주방식을 결정한 이래 별다른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연내 매각을 목표로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새정치연합은 ‘시점’을 정해두고 매각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맞서는 등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정무위 간사는 <뉴데일리경제>와 통화에서 “매각방식은 과점 주주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냐. 더치옥션과 같은 매각 방법, 매각 시점에 대해 정치권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정치권이 우리은행 매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렇게 볼 수 없다”면서 “적절한 매각 시점 타이밍을 봐야 한다. 지금은 주가가 이렇게 안좋은데 무조건 빨리 팔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반면 김용태 새누리당 정무위 간사는 “국가 입장에서 가장 좋은 값에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내 매각을 목표로 해서 오는 9월 정기국회 때 논의할 것”이라 말했다. 

    김 의원은 “이번 금융위가 내놓은 과점주주 방법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면서 “지금껏 우리은행을 안팔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살 사람이 없어서 못 팔았던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과점주주 방식 도입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 제 값에 팔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