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산책]대이동·혼혈의 인류사…혈통·인종은 편견 여행사의 기발한 테스트, 리얼리티쇼로 전파

[크리에이티브 산책] 모몬도(Momondo) DNA 여행(DNA Journey) by & CO(Copenhagen, Denmark)

21세기는 혼돈의 시대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움직이는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종교와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배척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공포와 두려움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오랜 기간 ‘정착농경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에서, 이방인들은 대개가 침략자였기 때문에 아무리 현대화된 사회라 하더라도 그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과연 우리 인간이 이동을 하지 않고 산 적이 있을까? 멀리는 1억7천5백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일 때부터, 게르만 족의 대이동이나 훈족과 몽골족의 침입, 십자군 전쟁, 근대 유대인들의 시오니즘, 현재 중동 난민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대규모로 이동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이른바 ‘혼혈’은 필연적이었다. 고트족이나 게르만족, 훈족과 같이 대량으로 이동하든, 하멜이나 마르코 폴로처럼 소규모로 이동하든. 

이동하는 무리는 때로는 약탈만 하고 돌아갔고, 때로는 전쟁으로 땅을 빼앗고, 또 때로는 와서 융화되어 함께 살았다. 우리 중 상당수에게는 여진족, 말갈족, 왜구,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들과 같이 다양한 민족들의 피가 섞여 있다. 그러니 ‘단일민족’은 ‘정치적’으로만 올바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부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생물학적인 차이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수 있다. 다에시(DAESH)나 중동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이들이 유럽이나 다른 기존 사회로 들어가 갈등을 빚으면서 전세계적으로 1, 2차 세계대전 때와 같은 국수주의나 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들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각별히 이런 국수주의나 인종주의가 영향을 끼치는 산업이 있다. 바로 여행산업이다. 가령 ‘중동의 파리(Paris)’라 불리며 관광이 주요 산업이었던 레바논의 베이루트는 레바논 내전 이후 최근 중동의 불안정한 사태로 인해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전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은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이니 상대적 손실은 더욱 큰 셈이다. 

사람들이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곳을 회피하는 것도 또 다른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마추픽추나 히말라야 오지보다는 클럽 메드가 있는 곳에서 편안한 며칠을 보내는 쪽을 택하려 한다. 실제 2016년 여행자들에게 새로이 ‘핫’한 목적지로 선정된 곳은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쿠바의 하바나, 캐나다의 토론토, 멕시코 시티, 그리고 도쿄처럼 모두 문명화된 곳이다. 안데스나 히말라야의 자연으로 모험을 떠나 서구문명에 대치되는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곤 했던 6, 70년대 히피정신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여행사 모몬도(Momondo)가 극복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새로운 여행상품을 개척하고, 사라져 가는 시장을 되살리고 싶었다. 모몬도는 사람들에게 자기 뿌리를 찾아볼 기회를 제공했다. 각자 자신이야말로 뿌리 깊은 영국인, 인도인, 혹은 무슬림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애국적’인 사람들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한 것보다 더 놀라웠다. 외양으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앵글로색슨인 사람도 실제 앵글로색슨의 DNA는 6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에게도 이슬람과 아프리카, 아시아의 DNA가 있었다. 독실한 무슬림에게는 유럽인의 DNA가 있었고, 극히 슬라브인 같이 생긴 사람에게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DNA가 발견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혈통에 집착한다. 문화와 사상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서로 같은 혈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일종의 가족애를 느낀다. 모몬도의 실험에 직접 참여했든, 지켜보기만 했든, 사람들은 자신의 DNA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역 출신 조상들의 DNA로 구성됐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구라도 자기 조상 중 누군가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반감을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지역, 그 인종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반감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먼 나라의 지명들이 언젠가 한 번은 꼭 찾아가야 할 버킷리스트에 담기게 된다. 사람들에게 잊힌 스토리를 되살려 들려줌으로써 새로운 여행관광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모몬도의 이 DNA 여행은 리얼리티 쇼 형식으로 촬영되어 웹페이지 등을 통해 배포됐으며, 2016년 유로베스트에서 필름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