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쿤회의의 실패와 대한민국의 미래 

    김성일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6차 당사국총회가 지난 12일 토요일 오전에 끝났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였다. 지구온난화를 막을 구체적 대안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뉴욕타임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과거의 억압감에서 벗어났다’는 측면에서만 성공적이었다고 칸쿤회의의 성과를 비꼬았다. 그러면서, 이제 유엔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탄소배출 감축을 논의하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지적했다. 

    1987년에 합의된 쿄토의정서는 가입을 거부한 미국을 제외한 모든 가입당사국들을 탄소감축 의무대상 국가와 면제대상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함께 면제대상 국가군에 들어 있다.

     이런 교토의정서 체제는 근본적인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탄소배출량 1, 2위 국가인 중국(74억t, 2009년 기준)과 미국(59억t, 2009년 기준)이 의무감축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후진국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기금이 중국과 한국과 같은 부자국가들의 탄소배출권 판매에 의해 거의 독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가입을 거부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과 절감의무를 나름대로 잘 알고 있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최대 경쟁국가인 중국에 탄소감축 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는 현 체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면 너무나 당연하다. 

    이번 칸쿤회의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길 많은 사람들은 바랬다. 그러나 칸쿤회의는 실패했다. 이것은 결국 유엔이 주도하는 탄소배출저감을 위한 글로벌 다자체제 (multilateral)가 붕괴됨을 의미한다. 

    이제 기후변화협약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고 있다. 두 나라가 협상을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를 추구하는 양자체제 (bilateral)나, EU-ETS(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처럼 지역간 협의에 근거한 준다자체제 (plurilateral) 등 다양한 체제가 더 부각 될 것이다. 

    준다자체제 - 94년에 체결된 WTO의 ‘정부조달협정’이 한 예. 현재 우리를 포함한 26개국이 가입되어 있으며, 다자협상과 달리 일정 규모의 가입국으로 제한하고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한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이제 어느 국가든 피할 수 없는 국가적 정책과제이자, 첨예한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외교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탄소배출을 둘러싼 국제체제의 지각 변동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탄소배출에 대한 우리의 국가전략을 수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탄소배출 감축 의무’를 2012년 이후에도 계속 회피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없다고 아무리 역설한다 해도 다자체제가 아닌 상황에서는 설득의 논리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거 일부 국가가 했던 ‘눈치 보기’나 ‘시간 끌기’ 작전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FTA(자유무역협정) 처럼 탄소배출 감축에 이해가 맞는 국가들끼리 무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한 무리를 이루려 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양자협약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유럽은 전통적인 EU로 무장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이들 중 어느 집단에 합류해야 할까? 그러려면 대한민국은 이제 얼마나 심각하게 탄소배출을 추가 감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토체제의 붕괴는 바로 탄소관세(탄소배출감축 조치를 하지 않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의 등장을 의미한다. 연 1조 달러가 넘는 무역 강국인 중국은 이를 잘 알고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8월 중국은 일본과 양자체제 탄소배출권 제도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전문가들의 허를 찌른 사건이었다. 탄소 문제에 관한 한 어수룩해 보이던 판다 (panda)가 사실은 무척 영민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경제 전반을 규율하는 탄소 협정이 아닌 일부 산업별 양자협정을 여러 나라와 맺을 가능성도 높다. 만약 철강, 시멘트 등 경쟁력 있는 몇 개 부문에서만이라도 중국과 일본 양국이 탄소배출량 감축에 합의하게 되면, 중국 핑계를 대며 탄소감축을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은 물론 한국, 러시아, 인도 등 탄소배출 감축 의무를 피하려는 나라들도 졸지에 명분을 잃게 된다. 이때 최대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중국의 준비과정이다.

    중국은 자국의 2012년 이후 탄소배출권 수출을 오래 전에 금지했다. 일반적으로 CDM에 의해 만들어진 탄소배출권을 구입할 때 2012년 이후 배출권은 콜 옵션 (구매권리)이라는 파생상품으로 계약하는데, 중국정부는 이를 금지해 버렸다. 탄소배출권의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팔기보다 누적해 놓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또 탄소배출권 사업에 65%의 특수세금을 적용해 막대한 자금까지 비축하고 있다.

    CDM(청정개발제도) -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가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실시한 결과로 달성한 감축량을 자국의 감축목표에 포함시키는 것

     2012년 이후 탄소배출량 감축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잘 준비된 나라가 중국이라고 칭하는데 잘못됨이 없다. 

    2010년 기후연구소 (Climate Institute) 보고서에 의하면 전기 값에 반영된 탄소가격은 호주가 t당 1.7 달러 인데 반해 영국은 호주의 18배, 중국은 8배이다. 유일하게 한국만이 호주보다 낮은 1달러로 가장 준비가 안 된 나라로 분석되었다.

    한국은 1천명 당 1일 석유 소비량이 45배럴이나 된다. 중국의 5배럴에 비해 무려 9배에 이른다. 중국이 한국 수준에 도달한다고 가정하면, 매일 6천만 배럴의 석유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는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75%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만약 중국이 미래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전 인류가 공멸로 가는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다.

    중국은 멍청이가 아니다. 이미 청정에너지에 국운을 걸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여기에 탄소배출권 시장 선점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국의 2005년도 탄소배출량은 약 5억3천만톤이다. 우리가 탄소배출 감축을 OECD 수준으로 의미 있게 시작해야 한다면, 2005년 대비 최소 10%를 줄이는 것을 초기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럴 경우, 감축해야 하는 탄소배출량이 연간기준으로 무려 5,000만톤을 초과한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목표는 2005년 대비 4% 수준에 불과하다.  

    마른 수건을 짜봐야 물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최적의 에너지 절약 상태에 이미 들어가 있는 일본과 우리의 산업분야는 탄소절감이 쉽지가 않다. 에너지 과소비형 미국에 비해 우리와 일본은 약간의 에너지 절감에도 지나치게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전경련 연구보고서는 일본내 탄소 t당 감축 비용을 $150로 보고 있다. 이 예상치를 적용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연간 비용은 75억 달러이다.

    탄소감축 비용은 감축량이 늘어나면 덩달아 올라간다. 일본 경우 1990년 대비 20% 감축이면 탄소감축 단가가 t당 $150 정도이지만, 감축량이 30%가 되면 단가는 t당 $450로 급격히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 고가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설득력 있는 국내탄소 감축 가능성이 매우 낮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의 비중이 크고, 에너지 가격/효율이 높아 자체 탄소배출량 감축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탄소 배출권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저렴한 탄소배출권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최적의 대안으로 t당  5유로 이하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되는 REDD의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

    REDD - 개발도상국에서의 산림녹화 및 황폐화 방지 활동을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한층 우호 분위기가 고조된 한-인도네시아 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에 눈을 돌려야 한다. 상호 협력사업을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최대 1억톤을 훨씬 초과하는 양의 막대한 REDD 탄소배출권 확보가 저렴한 가격에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인니 REDD 배출권으로만도 국내 탄소배출권 상쇄 수요를 모두 맞출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인니 양 국가가 모두 윈윈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치수 어젠다와 전국토의 성공적인 조림이 대한민국 후진국 탈출의 초석이었다면, 이제 앞으로 산림관련 국외 탄소배출권 확보는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다양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일본은 환경부가 대외적인 탄소정책을 담당하면서, 경제산업무역부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 태국, 미얀마, 중국, 페루 등과 양자협약 체제를 구축 중이다. 특히, 종합상사를 대리인으로 하여 REDD, 원자력발전 등 교토체제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던 배출권을 자국체제에서는 인정을 하며 인도네시아, 페루, 베트남 등에서 맹렬히 확보 중이다.

    최근 일본의 해외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한 흥미로운 접근으로는 경제산업통상부의 열대 우림국가 지원사업을 들 수 있다. 국내경기부양 자금, 해외원조 자금(ODA), 그리고 탄소배출권 수입 자금을 하나의 창구로 모아 일본과 탄소 양자체제를 구축한 9개 국가에 원조자금으로 일본 기기를 수출하고 이를 통해 현지 국가의 탄소배출량을 줄여 주고는 그에 해당하는 탄소배출권을 수입하는 새로운 금융 모델을 시작했다.

    수개월 전 일본은 베트남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며 탄소배출권을 대량으로 확보했다. 전술한 바처럼, 다자체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원자력 탄소배출권을 일본이 새로 만든 양자간 탄소체제에서 인정하면서 ODA사업과 연계시키는 모델이다. 예를 들어, 1기가와트 베트남 원자력 발전소 경우 탄소배출권이 2천만t이다. 따라서 톤당 $10 가정하면 2억불을 확보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해 수주한 UAE 원전에도 일본과 같은 전략을 적용하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지난 6월 발족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GGGI, 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가 서둘러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방안과 정책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본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은 우리는 최소한 일본을 쫓아 탄소배출권 수입 제도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산림청과 민간기업을 통해 REDD의 확보를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한국 주도 국제기구인 아시아산림협력기구 (AFoCO)의 활용도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기구는 아세안 10개 국가와 한국이 창립회원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국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가 2000년 기준 산림전용 탄소배출량에서 각각 세계 1위(25억t), 3위(7억t), 4위(4억2천만t)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9월 파이낸셜타임즈 (Financial Times)는 화석연료에 대한 지난 100년간의 지배력을 버전1 게임으로 볼 때, 작금의 청정에너지 경쟁을 뉴 그레이트 게임 (New Great Game)으로 칭한 바 있다. 이 게임에도 국가간 서열은 매겨질 것이다. 누가 궁이고, 차포 일지 그리고 누가 졸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초반 경쟁에서 서방국가들이 선두에 나서지는 못할 것 같다. 현재 미국은 연간 겨우 50억불을 에너지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향후 10년간 1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도 부끄럽지는 않다. 국민총생산의 2%인 800억불을 5년간 투자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문제는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발 빨리 적응하는 새로운 정책구상이다.

    칸쿤 회의 이후 엄청난 속도로 변화될 자원국수주의, 지구온난화와 에너지안보에 대한 민감한 반응, 또 에너지소비주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권한위임으로 야기되는 정치-기술적 노선변경 등이 국가 간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10년 후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인가? 그를 위한 정책은 있는 걸까?

    <김성일 /서울대교수, IUCN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