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기업 보유 유보금 518조원 중 80% 연구개발비, 유무형자산에 이미 사용

[사진설명=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5단체장들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대행, 한덕수 무역협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최 부총리,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연합제공]


 
정부의 기업 사내 유보금 과세 방침 표명에 재계가 강력 반발하자, 과세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져 경제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기업 투자를 촉진시키고 가계 소득을 늘려주기 위한 방안으로 사내유보금 과세 카드를 빼들었지만 재계의 우려와 논란이 만만치 않았던 것.

22일 재계에 따르면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의 당기이익금 중 세금과 배당 등으로 지출된 금액을 제외한 뒤 사내에 쌓은 금액으로서 단순히 ‘쓰고 남은 돈’이 아닌 사업 확장이나 영업활동을 위해 기계, 설비, 건물 및 현금성 자산 등의 형태로 재투자되는 돈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경제계는 이번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기업 법인세를 내고 난 뒤에 축적해둔 것인데, 여기에 또다시 세금을 매긴다는 건 명백한 이중과세라는 입장이다. 

통상 기업의 순이익 규모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기업 사내유보금이 늘어난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 중 배당이 되지 않고 공장 기계설비 토지 등에 투자한 돈도 포함돼 사내 유보금이 현금으로만 있지 않다는 현실이 논란의 핵심이다. 

즉 전체 사내유보금 중 20% 미만이 현금성이고 나머지 80%는 이미 연구개발비 혹은 유무형자산을 위해 이미 사용된 돈이다. 

현재 국내 10대 대기업이 갖고 있는 유보금은 모두 518조원 정도로, 5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보금이 가장 많은 삼성은 약 182조원, 현대차 70조원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돈이 모두 현금이 아닌 이미 투자된 것이 80% 이상이라는 뜻이다. 

예컨데 포춘 글로벌 500 소속 우리기업의 현금비중은 5.7%로 외국 평균 8.0% 보다 낮다. 주요국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현금비중(현금/자산, 2011년)이 평균 8.0%로 미국 8.6%, 일본 9.0%, 독일 6.4%, 영국 7.2%, 프랑스 7.7%, 한국 5.7%로 우리나라 매출액 상위 10개 기업의 현금성 자산규모는 105.6조원으로 미국의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 유보금이 최근 늘고 있는 이유는 대기업들이 수익을 많이 낸데 비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쌓아두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경기활성화 내수활성화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기업 투자를 늘리고 가계 소비 지출을 늘려 내수를 활성화시켜야겠다는 방침으로, 수치상으로 따지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부분을 활용해야 겠다는 의도가 크다.

정부는 기업투자를 유도하고 배당이나 임금 등을 늘려 가계소득 증대를 꾀하는 것으로, 이 방향에 기업들의 호응이 소극적이라면 세금을 거둬 정부 재정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유보금이 현금이 아닌 이미 공장이나 기계 토지 등에 투자됐기 때문에 과세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특히 유보금 과세는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더 늘리는 결과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의 투자와 수익창출 의욕을 저하시켜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아닌 역행하는 조치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를 꼽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기업의 경우 주로 외국인 주주들이 많아 배당을 늘린다 해도 국내 소비 증진 보다는 외국인 배만 불린다는 논리가 따른다.

이와 관련 전경련과 경총 등 재계는 유보금 과세보다는 기업 투자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각종 규제를 풀어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이 더 현명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를테면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기본공제 유지, 연구개발 세액공제율 확대, 안전설비투자세액 공제 대상 확대, 법인 지방소득세 공제감면 유지 등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22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경제 부총리-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경제5단체장들은 사내유보금 과세를 ‘신중히 재검토 해줄 것’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요청했다. 

이에 따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은 ‘과세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직무 대행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 부총리와 경제5단체장 간담회 직후 기자와 만나 "사내유보금 과세보다 성과보수로 가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재계와 충분히 이견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내유보금 중 건설과 기계, 장비 등에 과세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 변동분에 투자자금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성과보수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간담회 직후 "사내유보금 과세의 취지는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 아닌 기업의 성과가 투자ㆍ배당ㆍ임금 등을 통해 경제에 흘러가게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투자·배당 등으로 하면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에) 세부담이 결코 늘어나지 않도록 설계하겠다"며 "경제계에서도 그런 취지라면 이해가 된다고 공감했다"고 전했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브리핑에서 "최 부총리가 경제계와 상호 긴밀한 협의 하에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고 경제계에서도 상당폭 이해했다"고 알렸다.
 
정부와 재계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배출권 거래제에 대해서도 향후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재계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 애로사항을 제기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실무팀도 가동키로 했다.
 
최 부총리는 또 "현재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경기회복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왕성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경제계에서 적극 나서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느냐 쇠락하느냐의 골든 타임은 2년 밖에 안 남았다"며 "사전 규제를 없애고 사후 규제로 바꾸는 등 구조개혁의 강도를 높여 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이뤄진 규제 개혁 끝장 토론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규제 개혁에 대한 재계의 반응으로 무역협회 수장인 한덕수 회장은 "무역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환경의 개선, 규제 개혁 등 이런 문제에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는 "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고통받는 것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라며 "내수활성화와 소비심리 회복을 위해 힘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