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종의 사기극인데 개별 애널리스트들이 이를 파악할 순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가짜 백수오' 사태로 장밋빛 전망만 우후죽순 내놓은 증권사들의 보고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데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개별 애널리스트들이 한국소비자원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처럼 분석 기업들의 판매 제품 성분까지 일일이 검증할 순 없었단 얘기다. 당시 홈쇼핑을 통해 갱년기에 좋다는 백수오 제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내츄럴엔도텍에 대한 낙관적인 리포트를 쏟아놓은 데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7년 4개월 만에 710선을 돌파했던 코스닥지수가 조정을 받아야만 했지만 이번에도 '매도(Sell)' 리포트는 0건이었다. 오히려 소비자원의 가짜 백수오 발표가 있던 지난달 22일 이후에도 삼성증권은 이 회사의 투자자 컨퍼런스 콜 후기를 담은 '매수(Buy)' 리포트를 발간하기도 했다.

    실제로 올 들어 8일 현재까지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올라온 내츄럴엔도텍 관련 보고서 25건 가운데 투자의견 '매수(Buy)'를 제시한 보고서는 모두 23건이었다. 나머지 2건의 경우 하나대투증권에서 발간한 NR(Not Rated) 보고서였지만 역시나 긍정적인 전망으로 도배돼 있다. 정식 보고서가 아닌 NR 보고서는 투자의견이나 목표주가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번 논란은 앞서 소비자원이 지난달 22일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공정 과정에서 가짜 원료인 '이엽우피소'가 사용됐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식약처 재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와 현재까지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태로 주당 9만원대까지 올랐던 내츄럴엔도텍 주가가 곧장 1만원대로 고꾸라졌다. 연일 개장과 동시에 하한가로 직행하더니 열흘새 시가총액 1조3000억원가량이 증발된 것이다. 코스닥 시장에 대한 탈출도 이어졌다. 못 믿을 헬스·바이오株로 낙인 찍히는 바람에 외국인들과 기관들이 이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입은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 몫이 됐다.

    그러나 이를 구제하거나 제재할 만한 뾰족한 장치는 현재까지 부재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이 고의로 작성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율규제에 따른다"며 "해당 보고서를 발간한 증권사들의 신뢰도가 하락해 시장으로부터 외면을 받을 순 있어도 금감원에서 제재할 방법은 딱히 없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애널리스트들이 반성의 내용이나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내놓지 않는 데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는 강제성을 띄는 게 아니라 단지 참고용이기 때문에 투자 책임은 투자 당사자 몫"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역시 해당 리포트를 발간한 애널리스트에 대해 패널티를 부과하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당시 홈쇼핑을 통해 매출이 잘 나왔던 데다 원재료의 진위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매도나 홀드(Hold) 의견의 추가 리포트 발간 계획에 대해서는 "리포트 발간 계획은 홈페이지에도 공지했지만 내츄럴엔도텍에 대한 커버리지가 지난달 30일부로 종료됐다"며 "저희 리포트를 믿고 투자하신 투자자들에게는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향후 좀 더 철저하고 신중하게 분석해 더 좋은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어쩔 수 없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사실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투자정보가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그나마 투자에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증권사들의 리포트다. 그런데 신뢰한 댓가가 고작 이것뿐이라는 의미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 무용론이 시장에 반복적으로 고개를 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책임감 없는 리포트가 난무한다면 제2, 제3의 백수오 사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신뢰 잃은 리포트로 손실을 떠 안는 현상이 되풀이 된다면 개미들은 결국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증시의 3분의 1을 떠받들고 있는 개미들이 시장을 빠져나간다면 모처럼 만에 띈 시장의 활기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자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