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관광특구 불법 노점상, 무더위 속 식재료 관리·조리 상태 부실음식 조리하는 개인 위생 관리도 부족… 식중독·전염병 우려도식약처, 서울시 중구청, 서울시청 "우리 소관 아냐"… 관련법 전무
  • ▲ 명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불법 노점상에서 간식을 사먹고 있다. ⓒ김수경 기자
    ▲ 명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불법 노점상에서 간식을 사먹고 있다. ⓒ김수경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길거리에서 불법으로 음식을 파는 노점상의 식품 위생에 비상이 걸렸다.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음식 관리에 조금만 소홀해도 식중독이나 전염병 등이 발생할 위험이 크지만 정부는 사실상 불법 노점상에 대한 위생 관리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제(17일) 오후 기자가 찾은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는 수십여개의 노점상들이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김밥과 떡볶이, 튀김과 같은 분식부터 계란빵, 케밥, 떡꼬치, 닭강정, 만두, 회오리 감자, 가리비 구이, 문어·낙지·통소라 꼬치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다양한 메뉴의 먹거리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수백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으며 음식을 주문했고 노점상인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메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손을 씻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노점상인들은 1회용 위생장갑을 사용했고 몇몇 상인들은 아예 맨손으로 음식을 조리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도중 돈을 받아 계산을 하는가 하면 개인 스마트폰이나 쓰레기통을 만진 후에도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조리하는 등 개인 위생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도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돌았지만 날계란이나 고기류, 밥, 수산물 등 상온에서 상하기 쉬운 식재료의 보관이나 진열 상태는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대부분 식재료를 상온에 그대로 방치하거나 간혹 간이 아이스박스를 사용하거나 얼음 위에 보관하고 있었다.

    음식 조리 후 집게나 국자 등 조리 기구를 세척하는 곳은 단 한 곳도 보지 못했다. 음식 조리대 바로 옆에 쓰레기 봉투를 매달아 놓은 곳도 여럿이었다. 식재료의 원산지나 유통기한 등을 표기한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이 문어, 낙지, 통소라 등의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김수경 기자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이 문어, 낙지, 통소라 등의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김수경 기자


    상황이 이렇지만 길거리 불법 노점상에 대한 식품 위생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이들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책임지는 식품의약안전처는 물론 명동 관광특구를 관리하는 서울 중구청과 서울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명동에서 음식을 파는 노점상은 영업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노점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행정 조치를 내릴 근거나 관련법이 없다"면서 "식품위생법의 규제 대상은 건축물에서 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는 음식점에 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명동 길거리 노점 음식점에 관한 내용은 관할 구청인 서울 중구청이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 가로정비팀 관계자는 "명동 거리에서 영업 중인 노점상 364개는 불법이긴 하지만 모두 '노점 실명제'를 통해 도로점용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도로를 점용할 수 있다는 토지 사용에 대한 허가일 뿐 그들이 판매하는 식품에 대한 위생관리는 위생과에 문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중구청 위생과 측은 "건축물 내 영업신고가 돼 있는 음식점에 한해 위생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건축물 대장상에 허가를 받지 않은 노점상은 영업신고가 돼 있지 않은 불법 영업이기 때문에 위생과에서 이를 관리하거나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이 얼음물 안에 가리비를 보관하고 있다. ⓒ김수경 기자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이 얼음물 안에 가리비를 보관하고 있다. ⓒ김수경 기자


    만약 길거리 불법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 먹은 고객이 식중독이나 전염병 등에 감염됐을 경우 해당 업체를 대상으로 한 법적인 행정조치는 불가능하며 고객이 직접 형사기관에 고발조치를 취해야한다. 이들을 처벌할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중구청 위생과 관계자는 "영업신고가 돼 있으면 시정 명령이나 과태료 부과 등 후속조치가 가능하지만 불법 노점상은 행정 조치를 내릴 수가 없다"면서 "이후 형사기관에 고발을 하더라도 식중독이나 전염병 등의 원인이 해당 노점이라는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체변 검사 등이 수반돼야 하고 인과 관계를 규명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고 설명하며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에 문의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시청 측은 "불법 노점상은 식품위생법상 건축물 내 영업허가를 받은 음식점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를 단속할 근거가 없다"면서 "노점상 음식과 관련한 위생 안전 문제는 식약처나 중구청 쪽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식약처와 서울 중구청, 서울시청 담당자 모두 불법 노점상의 식품 위생 안전 관리를 어디에서 관할하고 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우리 소관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법 노점상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식품위생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어떠한 점검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수십년째 방치하고 관련 법이나 위생 방침 등 최소한의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길거리 음식점이 사용하는 식재료 원산지나 유통기한도 전혀 알 방법이 없다"면서 "길거리 노점상 수가 늘고 고객도 점점 늘고 있는데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까지 길거리 노점 음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이나 전염병 사태가 보고된 사례는 없지만 대형사고가 난 뒤에야 부랴부랴 법을 뜯어 고치기보다는 국민 건강을 위한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면서 "식약처에서 세부 기준을 마련해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서울시는 불법 노점 음식점을 식품위생법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포함하자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마련하고 식약처에 건의를 검토중이다. 아직 정식으로 제출한 것은 아니지만 내부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 ⓒ김수경 기자
    ▲ 명동 관광특구 거리에 있는 한 노점상.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