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기아차는 물론 현대차그룹, 부품업계, 협력업체 나아가 자동차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 자동차산업을 이끌어가는 맏형들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영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판매가 급감했고, 미국시장에서는 유력 브랜드와 경쟁이 심화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 중국공장 4곳은 판매 부진으로 대금 지급이 늦어지자 현지 부품업체들이 공급을 끊으면서 불가피하게 가동을 중단했다. 기아차도 사정은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내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전기료 인상 가능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부담 요인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노조와의 갈등으로 파업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는 24차례 파업으로 약 14만2000대의 생산차질을 초래해 3조1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냈다. 기아차 노조도 파업 때문에 약 9만대의 생산차질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2조2000억원 정도로 추산됐다. 현대기아차를 합칠 경우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만 5조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 통상임금은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다. 기아차가 통상임금 패소 시 최대 3조(회계평가 기준) 이상의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에 불과한 기아차는 충당금 적립으로 당장 3분기부터 영업적자가 불가피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판결을 토대로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와 부품업체들 노조도 너도나도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소송을 걸 것이 뻔하다. 이미 비슷한 소송이 많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자동차산업 전체가 통상임금 소송에 휘말리면 공멸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즉, 기아차 판례가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재판부의 판결이 더욱 중요하다. 재판부 역시 이 사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신중하게 고민해서 판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아차 통상임금은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고 일자리 감소를 걱정했다.


    통상임금 판결의 최대 관건은 '신의칙' 적용 여부다.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은 민법의 뿌리를 이루는 대원칙으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된 민법 제2조를 뜻한다.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기아차 노조가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형평에 맞게 대처하기를 바랄 뿐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당장 노조원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겠지만, 회사는 적자로 돌아서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듯이, 회사가 있어야 직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재판부는 6년을 끌어온 이번 판결로 기아차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