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李 독대, 부정한 청탁 여부 '최대 관건' 불구 증거 행방 묘연항소심서 불거진 '0차 독대'… '정확한 시점 알 수 없다' 결론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내달 5일 열린다. 이 부회장은  ▲단순공여 및 제3자 뇌물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등의 5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실형 5년을 선고하면서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포괄적 현안으로 인식해 묵시적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독대와 경영권승계를 묵시적 청탁의 근거로 인식한 것이다. 항소심은 독대와 승계작업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이에 핵심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독대와 경영권승계에 대한 항소심 결과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내달 5일 열린다.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내달 5일 열린다. ⓒ뉴데일리DB


    "모든 것이 저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시작됐습니다. 원해서 간 것이 아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 챙겼습니다.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도 제가 다 지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의 단독 면담, 즉 '독대' 여부와 내용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심에서 독대 내용을 둘러싸고 펼쳐진 특검과 변호인단의 팽팽한 신경전은 항소심에 이르러 추가 독대 여부로까지 번졌다.

    독대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두 사람 이외엔 만남의 성격과 내용을 특정할 수 없지만, 특검의 공소장 속엔 당사자들도 모르는 대화 내용이 적시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경영권 승계가 다급해진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건넸고, 그 대가로 대통령의 요구(정유라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를 받아들였다는 전제가 이미 공소장 전체에 깔려있는 상태다.

    근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삼성 뇌물사건'의 시발점이 된 두 사람간 만남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1심 재판부는 2014년 9월 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총 세 차례의 독대가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당초 특검은 이날 독대를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본격적인 뇌물수수합의가 오고 갔다는 논리를 펼쳤다. 다만 5분 가량의 짧은 만남 속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워지자 의심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후 발생한 독대로 향했다. 

    특검은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2차, 3차 독대 전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의 현안이 담긴 '말씀자료'를 전달한 사실에 주목했다. 해당 자료에는 '현행 법령상 정부가 도와줄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부 임기 내에 승계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언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 메르스 사태, 면세점 등 삼성의 현안들도 포함됐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독대가 이뤄진 일부 기업들의 경우 자신들의 현안을 직접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삼성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확신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이 같은 확신은 당시 문건 작성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해 힘을 잃게 된다.

    말씀자료를 작성한 윤 모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자료 작성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고 삼성 측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며 "해당 자료는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를 참고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당시 언론에서는 사실상 승계가 끝났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기 때문에 격려 차원에서 쓴 내용"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말씀자료를 전달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역시 "통상 대통령의 말씀자료는 그대로 쭉 읽어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워딩 형태로 돼 있는데 삼성과 관련된 말씀자료는 그런 형식이 아니고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다"며 "참고자료는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 들고 가지 않으며 실제로 관련 내용을 언급했는지 대해서도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독대는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협조를 구하는 관례적인 자리일 뿐 민원을 해결하고 대가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며 독대의 성격과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1심 재판부마저 독대 과정에서 명시적인 청탁이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자, 특검 측은 항소심에 이르러 기존의 1차 독대보다 사흘 앞선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추가 독대가 있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핵심 근거는 당시 이 부회장을 영접했다는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진술이다.

    안 전 비서관은 '0차 독대'로 일컬어지는 자리에서 이 부회장을 안내하던 중 명함도 받고 연락처를 저장하기까지 했다며 다소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증언했다. 특검으로선 1~3차 독대 이전 또 다른 독대가 존재해야 부정한 청탁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안 전 비서관의 진술에 상당한 무게를 두기도 했다. 

    다만 독대가 있었다는 안 전 비서관의 진술은 '시점은 기억할 수 없다'로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실제 이 부회장의 명함에는 연락처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헌법에 대한 최고 권위 기구인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요구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로 봐야 하며, 요구를 받은 기업은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최종선고만을 앞둔 시점에서도 단지 '삼성'이라는 이유로 유독 특별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모습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