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또 다른 독대 만들어 '부정한 청탁' 시기 재조정 '눈살'"청와대 출입기록 등 증거 없는데… 재판부 판단에 눈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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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말이 없었다. 그는 특검 사무실에 잠시 머문 뒤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이동했다. 법원의 심문절차는 4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렸다.법원의 결과는 15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5시 발표됐다.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도주 및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가 없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채 구치소를 빠져나갔다.영장이 기각되자 법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앞장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뜻밖이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삼성 예외주의, 재벌 예외주의를 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년 전 일이다.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의 항소심 선고가 내달 5일 열린다. 이 부회장은 2차 영장실질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지난해 2월 구속됐다. 그는 1심에서 실형 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항소심은 1심에 비해 관심이 낮았다. 이 부회장은 이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뇌물을 건넨 정경유착의 표적'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항소심의 구조는 1심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씨가 삼성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지원받았고, 삼성은 그 대가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약속받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배경으로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독대)이 거론됐다.특검은 두 사람이 독대 과정에서 은밀한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막바지에 '0차 독대'가 있었다며 공소장을 변경한 것도 이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근거로는 안봉근 전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의 증언이 제시됐다. 그동안 양측은 세 차례의 독대가 이뤄졌다는 사실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약 5분간 진행된 1차 독대(2014년 9월 15일)와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2차(2015년 7월 25일), 3차(2016년 2월 15일) 독대가 그것이다.하지만 독대 내용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검은 1차 독대를 부정한 청탁의 시작으로 주장해왔다. 승마협회를 맡아달라는 요청과 함께 대가관계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추측이다. 2차와 3차 독대는 대가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대통령 말씀자료와 여러 정황이 증거라는 주장이다.이와 달리 삼성은 1차 독대는 즉흥적인 만남으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마무리됐다고 반박했다. 2차와 3차 독대에서는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로 승마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정부를 비판하는 JTBC의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질책만 받다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특히 공소장에 추가된 '0차 독대'를 놓고는 강한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특검은 0차 독대를 제시하면서 부정한 청탁의 시기을 앞당겼다. 5분간 진행된 1차 독대를 청탁의 근거로 제시하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0차 독대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청와대 안가에서 앞선 독대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는 치매에 걸린 것"이라 강하게 부인했다.대통령 경호처의 청와대 안가 출입기록과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증언한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 역시 삼성측의 설명을 뒷받침한다.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이 '명함에 적힌 휴대폰 번호를 저장했다'는 증언과 모호한 수첩 내용을 기반으로 네번째 공소장을 변경한 '0차 독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