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만원 달성 밀어붙이기… 올해 16.4%·내년 10.9% 인상일자리·소득 감소 후폭풍… 소상공인 "불복종" 선언까지
  •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뉴데일리 DB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뉴데일리 DB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 제재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던 정부. 차라리 범법자가 되겠다며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한 영세 소상공인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현재의 자화상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에 이어 내년도 10.9% 인상이 결정됐다. 불황에, 인건비 부담에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다. 경제 논리 대신 정치 논리로 풀어버린 최저임금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


    서울 서초구의 한 지하상가. 식당 앞에 손님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맛집이어서, 식당에 자리가 없어 밖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주문을 받는 무인기 앞에서 메뉴를 고르는 사람들의 풍경이다.

    편의점도 무인(無人) 시대가 열렸다. 매장엔 아르바이트생이 없다. 출입문에 달린 단말기에 신용카드를 대면 문이 열린다. 물건을 고른 뒤에는 무인 계산대에서 손님이 직접 바코드를 찍는다. 단말기 화면에 뜬 가격을 확인하고 신용카드를 긁으면 계산 끝.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고육지책을 짜내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 주인은 "최저임금이 오르나 안 오르나 버는 돈은 똑같은데 인건비만 늘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초기 투자 비용이 좀 부담되더라도 매년 늘어나는 인건비를 충당하기보다는 무인기 도입이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장은 "특히 외식업종은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려고 스스로 근로시간을 줄여 경영의 효율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며 "예전엔 손님이 뜸한 점심과 저녁 장사 사이(오후 2~4시) 영업 준비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봤지만, 이제는 점심 장사를 서둘러 마감하고 휴식시간을 두어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바꿔놓은 우리 주변의 모습이다.

    올 들어 영세 자영업자들이 감당 못 할 정도로 최저임금이 껑충 뛴 배경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핵심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홍준표(자유한국당)·안철수(바른미래당) 후보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파격적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에도 문 대통령의 공약은 보완정책과 실현 가능한 로드맵 제시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측은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며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고 호소했다. 표(票) 경쟁이 무리수를 둔 발단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 올해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6470원보다 16.4%(1060원) 올렸다. 이는 16.6% 인상률을 기록했던 2000년 9월~2001년 8월 이후 최대 인상 폭이다.

    문제는 정부에서 공약한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의 반발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업계의 경우 CU는 올해 상반기 순증 점포 수가 394개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942개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GS25도 올 상반기 순증 점포 수가 343개에 머물렀다. 지난해 상반기 1048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하락 폭이 컸다. 세븐일레븐도 같은 기간 순증 점포 수가 388개에서 270개로 100개 이상 줄었다.

    순증 점포 수란 개점 점포 수에서 폐점 점포 수를 뺀 수치다. 신규 점포 개점 수가 줄거나 폐점이 증가했다는 것으로, 사업주들은 급격한 인건비 부담 상승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반 식당에서는 일자리를 줄이면서 아르바이트생 대신 무인 주문기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악구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장 모 사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무인 주문기를 도입했다"며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증권가에서는 최저임금이 뛰면서 무인기기 관련주가 상승하고 있다. 대표적인 무인기기주로 꼽히는 종목인 케이씨에스, 한네트, 한국전자금융 등은 최저임금이 이슈가 되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도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문용 단말기를 만드는 이들 회사의 몸값이 뛴 것으로 풀이된다.

    매장 무인화가 빠르게 확산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무인기기 사용이 생각보다 편리하다는 소비자 반응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 ▲ 폐점한 편의점의 모습. ⓒ진범용 기자
    ▲ 폐점한 편의점의 모습. ⓒ진범용 기자

    ◇문 대통령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사실상 어려워"… 내년 최저임금 8530원 결정

    사실상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지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소득주도성장은 시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급기야 경제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구체적으로 업종을 거론하며 신축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12일 경제현안감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일부 업종과 55~64세 등 일부 연령층의 고용 부진에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공약대로)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가기보다 최근 경제 상황과 고용여건,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 시장의 수용 능력을 고려해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리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총리 발언에 최저임금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5%포인트 낮아진 데는 정부의 속도조절론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사실상 2020년까지 1만원 달성은 어려워졌다. 대선 공약을 달성하려면 내년 이후 최저임금이 평균 15.2%씩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적과 반대가 이어지면서 문 대통령은 직접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최저임금위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어려워졌다"고 시인했다.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 가능한 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인상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특히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이하 전편협)는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협회 측은 만약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을 땐 브랜드 편의점 5만여개(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와 개인 편의점 2만여개 등 전국 7만여 점포가 동시 휴업하는 것은 물론, 편의점에서 수행하는 공공기능 역할도 거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불만을 토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휴수당이 반영되지 않은 단순 시급 계산 방식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주 15시간 이상 근무자에게 1주일에 1일분 이상의 주휴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주 40시간 근로자를 기준으로 한 달 근로시간을 174시간쯤으로 보면 최저임금 기준 급여는 131만220원이 된다. 여기에 주휴수당 26만3550원(시급 7530원×월 35시간)을 포함하면 실제 급여는 157만3770원으로 상승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9045원쯤으로, 미국 8051원, 일본 8467원, 이스라엘 8962원보다 높다. 현재 주휴수당을 의무화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한국, 대만, 터키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추가로 드는 4대 보험료(시간당 868원)와 1년 이상 근무자에게 적립되는 퇴직급여(시간당 7540원)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시간당 법정 인건비는 1만667원쯤이라는 계산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이미 웃도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보통 편의점이나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 인력을 주말을 포함해 4~5명 고용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현재 최저임금이 마지노선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계상혁 전편협 회장은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고객의 소비도 증가한다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그러나 소득 수준은 비슷한데 인건비만 오르는 상황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최저임금만 올리는 것은 전국 편의점뿐만 아니라 500만 자영업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계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친노동자 성향의 정책을 펼치면서 각종 정책 부작용에 따른 피해를 경영계에 전가하고 있고 영세 자영업자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맹목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 붕괴 등 큰 사회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므로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