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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 제재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던 정부. 차라리 범법자가 되겠다며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한 영세 소상공인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현재의 자화상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에 이어 내년도 10.9% 인상이 결정됐다. 불황에, 인건비 부담에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다. 경제 논리 대신 정치 논리로 풀어버린 최저임금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
최저임금은 국가가 노사 간의 임금 결정 과정에 개입해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게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들어 대선공약 달성을 이유로 인상률을 급격히 올리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경영계는 현장의 지급능력을 고려해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이를 반대한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한국 최저임금 비율 OECD 최고 수준
해외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그러나 이들 공통점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나이·직종·지역별로 차등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7.25 달러(한화 8185원) 수준으로 동결이 예상된다. 다만 일부 주(州)는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는 주별로, 연방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이상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올해 초에는 18개 주, 19개 대도시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주별로 11~15달러(한화로 1만2419~1만6935원쯤) 수준이다. 지역별로 서로 다른 최저임금을 여건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다.
캐나다도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을 채택했다. 건물 관리인이나 수위·경비원, 농·어업을 위해 고용되면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다. 업종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은 개별 주의 자치 권한으로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국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
영국도 25세 미만 청년과 수습인력에 대해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다. 25세 이상 노동자에 대해선 국가생활임금을 통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국가생활임금이란 기존 21세 이상 노동자에게 적용되던 성인 최저임금의 나이 구간을 '21세 이상 25세 미만'과 '25세 이상'으로 나누고 '25세 이상에게 적용되는 성인 최저임금'에 별도의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프랑스는 고용된 분야에서 6개월 미만의 경력을 보유한 18세 미만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감액할 수 있다. 17세 이상 18세 미만이면 최대 10% 감액이 보장된다. 17세 미만은 20%까지 감액된다. 분야별 기술 숙련 정도에 따라 같은 시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셈이다.
칠레도 최저임금 적용에 있어 감액을 인정한다. 18세 미만 또는 65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감액을 적용하는 등 나이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있다.
호주는 나이에 더해 업종·직종을 임금 인상에 고려하고, 일본도 업종·직종과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책정한다.
최저임금 금액을 비교하면 한국은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보다는 낮다. 우리나라의 올해 최저임금은 7530원인 반면 미국과 일본은 우리 돈으로 8200원쯤이다.
그러나 주요국의 최저임금에는 상여금이나 숙식비 등이 포함돼 있어 절대금액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올해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산정기준)에 포함했다. 바뀐 내용은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을 훼손했다고 반발하며 법안 재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전체 근로자의 중간수준임금(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국가별 비교 지표로 보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중위소득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52.83%로 OECD 31개국 중 17위다. 그러나 올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63.2% 수준까지 오르면서 최저임금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의 대열에 오를 전망이다. -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최저생계비 보장으로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고, 소득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이 중위임금대비 60% 돌파를 앞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더는 최저생계비 보장이나 가계소득 증대 수단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불만과 우려를 잠재우려고 도입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도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견이다. 독일 정부도 2007년부터 노동자의 세금납부 후 실질임금이 장기실업자대상 실업부조(하르츠 IV) 지원금에 못 미치면 '하르츠 IV 추가지원(Harz IV Aufstocker)'을 통해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응책은 근본적으로 국민 세금 투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찬반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의 지급능력 등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이뤄졌다고 비판한다. 영세 자영업자부터 중소기업, 대기업까지 생산원가가 올라 가격이 인상되고, 물가상승으로 일반 서민 가계의 실질 소비가 줄어드는 여파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전체적인 물가를 올리고 중견, 영세 기업들이 납품하는 생산원가를 올려 결국 모든 기업의 생산원가가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가공식품이나 외식물가의 상승은 결국 일반 서민 가계의 부가세 부담이 늘어나는 증세 폭탄으로 돌아와 당사자 모두 손해를 보게 되는 네거티브섬게임에 그친다는 비난이다.
김광수 경제연구소 소장은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최저생계비를 지원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