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탄' 편의점업계 기반 흔들… 가맹점·본사 모두 죽을 맛신생·중기, 인력 감축·경쟁력 저하… "사장이 더 일해야 버텨"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 고금리 대부업체 대출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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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면 명단을 공개하고 신용 제재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던 정부. 차라리 범법자가 되겠다며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한 영세 소상공인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현재의 자화상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에 이어 내년도 10.9% 인상이 결정됐다. 불황에, 인건비 부담에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다. 경제 논리 대신 정치 논리로 풀어버린 최저임금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이 오른 후 현장에서 인상의 충격파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영세·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은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한다지만, 우는 아이 젖주기 식의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늘어난 인건비와 빚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는 대부업의 고금리 대출로 손을 뻗치는 상황이다.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던 정부의 막연한 '청사진'은 대립만 야기하고 있다. 현장의 지급능력은 무시한 채 인상을 밀어붙이다 보니 일자리는 줄고, 게임업계 등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역풍을 맞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본사도 신음… 흔들리는 편의점 토양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가장 큰 홍역을 치르는 곳은 편의점 업계다. 편의점은 다른 유통기업과 달리 직영점보다 가맹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가맹점이 붕괴되면 본사 매출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아르바이트 인력은 가맹점에서 자체적으로 고용하므로 단순히 생각하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본사가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건비 부담으로 가맹점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본사 수익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 당국은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본사에서 분담하라고 압박하고 있어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국내 대표 편의점 운영사 BGF리테일과 GS리테일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가맹점주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각 1조500억원, 9000억원 규모의 상생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상생안 지원금이 고정 비용으로 묶이면서 직전 분기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했고, 앞으로도 뚜렷한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기대비 1.5% 감소한 26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3166억원으로 40.3% 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221억원으로 2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GS리테일도 편의점 사업부문의 부진으로 지난 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GS리테일은 올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9948억원, 영업이익 21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8.1%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7.2% 줄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191억원으로 18.7% 감소했다.
편의점 사업부문인 GS25만 보면 전년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7% 급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영주 지원금 증가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맹점뿐 아니라 본사까지 흔들리는 셈이다.
편의점 관계자들은 "지난 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상생지원금이 발생하기 시작해 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며 "점포당 10만원의 상생 지원금만 추가해도 1만개 이상의 점포를 운영하는 본사 처지에선 1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중소기업, 자구책 마련에 제 살 깎기 감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은 '제 살 깎기'식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속되는 불황에 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며 경영환경이 악화하자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상황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대형 철강사가 포진된 철강업계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다만 그동안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쳤던 일부 중소형 철강 유통사들은 내년도 인상 전 파장을 줄이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부산 지역 철강 유통업체인 A사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또다시 두 자릿수로 결정되자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 4명을 줄였다. 오후 6시 이후 야근도 없앴다. 중소업체 특성상 주말 근무가 불가피했지만, 이마저 없애기로 결정했다. 모두 인건비 상승폭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직원들의 업무량을 줄인 대신 회사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자 사장 본인의 근로시간은 늘렸다. A사 사장은 "불황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 상승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원을 일부 정리했다"며 "우리같은 중소업체는 직원을 줄이면서 사장이 더 일해야하는 구조로 바뀔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게임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형 게임 개발사는 최저임금 인상 부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면 중소 개발사나 스타트업 개발사들은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일부 스타트업 개발사는 시간제 근로자들의 인건비 부담으로 인력감축과 신규채용 축소를 단행했다. '사람이 곧 경쟁력'인 게임업계에서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결정을 한 셈이다. 게임산업이 점점 글로벌 경쟁으로 확대되는 시점에 최저임금 인상이 경쟁력 약화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스타트업 개발사 관계자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강행은 업종별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우수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작 개발과정에선 두 손을 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성급한 결단이 자국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26일 내년도 최저임금 적용안에 대한 이의제기서를 통해 "최저임금은 국가가 아닌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이라는 점에서 지급주체의 지급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금융권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악화 등으로 대출과 연체율이 늘며 빚 폭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는 늘어난 인건비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대부업의 고금리 대출로 손을 뻗치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사상 처음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자영업 가구당 부채도 1억원이 넘는다. 100만원을 벌면 35만원을 빚 갚는데 쓰면서 돈을 벌어서 갚을 수 있는 구조가 망가졌다.
대출액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권 개인사업자의 대출잔액은 30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29조5000억원)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6월(9.3%)과 비교해 1.5%포인트(P) 상승했다.
상호금융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감독원 설명으로는 지난 4월 말 현재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조합의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49조원이다. 지난해 말 44조1000억원보다 11.1% 늘었다.
대출은 느는데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는 오르다 보니 이자 부담으로 인한 연체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이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대출절벽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대부업체로 손을 뻗었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저신용자 중 자영업자는 지난해 6월 말 18.8%에서 12월 말 21.6%로 늘었다. 금융권에선 올 상반기 25%까지 확대됐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현황'을 봐도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 1분기 0.33%를 기록, 지난해 말과 비교해 0.04%P 상승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는 "영세자영업자는 1금융권 대출이 어려워 2금융권이나 대부업으로 대부분 넘어갔다"며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경제 하방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최저임금 수준도 중위임금대비 40~50%를 돌파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은 더는 최저생계비 보장이나 가계소득 증대 수단이 아니다"며 "앞으로 몇 년간 동결해도 국가 전체에 미치는 충격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