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잘못된 노동부 행정지침 어물쩍 넘어간다 비판
  • ▲ 최저임금 결정.ⓒ연합뉴스
    ▲ 최저임금 결정.ⓒ연합뉴스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아우성에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얘기했지만,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주휴시간(유급휴일 시간)을 포함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달성을 1년 앞당겨 공식화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둘러싼 경영계의 비판에 대해 "주휴수당이 포함된 최저임금을 209시간으로 시급 환산하는 것으로, 기업에 추가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전혀 없다. 최저임금이 더 인상되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노동계의 불이익 주장에 대해서도 "약정주휴수당을 제외했는데 이를 주는 기업이 많지도 않고, 준다고 해도 최대 243시간으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아 제외했다"며 "지난 30년간 쭉 해온 것을 반영하는 차원이다. 변동이 없는데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소상공인업계에선 정부가 시장의 수용성을 언급하며 속도 조절을 언급하다가 뒤통수를 친 것이나 진배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에 대해 "필요하면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며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년부터 적용할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정기준으로 명문화하면서 소상공인업계에서 내년 최저임금은 8350원이 아닌 1만20원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속도 조절은커녕 시장에서 주휴수당을 포함해 지급하고 있는 실질 최저임금을 공식적인 최저임금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견해다. 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장은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질 때 분자에 해당하는 월 급여에 주휴수당, 분모에 해당하는 소정근로시간에 주휴시간을 모두 빼거나 모두 넣어 계산하는 방법을 써왔다"며 "두 계산법 모두 주휴수당은 최저임금과 무관하다는 전제로, 지난 30년간 근로감독관이 이 지침에 따라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가렸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하지만 주휴수당은 최저임금 산업범위(산정기준)에 포함돼 있다. 이를 빼고서 계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했다. 최저임금법은 산정기준에 포함하지 않는 임금을 명문화하는데 여기에 주휴수당은 빠져 있다. 돌려 말하면 주휴수당은 산입범위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일선 근로감독관들도 이를 인정한다"고 부연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주휴수당을 산정기준에서 빼는 노동부의 행정지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대법원이 2007년부터 노동부 행정지침과 어긋나는 판례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혼란은 커졌다. 대법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주휴수당이 포함돼 있다는 취지의 판결로 경영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법원은 한 발 더 나가 근로수당과 실질적인 근로시간은 다르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최근 판례에서 주휴수당은 최저임금법이 정한 산입대상이라고 봤다. 월 급여를 계산할 때 주휴수당을 포함하는 게 바르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주휴수당은 1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휴일에 일하지 않고도 받는 1일치 임금이다.

    또한 대법원은 근로시간에 있어 연장·야간근로수당에 따른 근로시간은 소정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게 옳지만, 주휴수당에 해당하는 주 8시간은 근로시간을 계산할 땐 빼야 한다고 판결했다. 주휴수당은 실제로 일정한 노동력을 제공하면 받기로 정한 수당 개념이지만, 주휴시간은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한 시간은 아니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노동부가 대법원 판례를 문리적(文理的) 해석일 뿐이라고 이해한다는 점이다. 현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환산할 때 '소정근로시간 수'로 나누도록 정하고 있어 이를 문맥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주휴시간을 뺐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그동안 일관적으로 적용해온 행정지침과 일치한다는 태도다. 홍 부총리가 이날 "지난 30년간 쭉 해온 것을 반영하는 차원"이라고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계산할 때 분자에 주휴수당을 넣으면 분모에도 이에 상응해 주휴시간을 포함했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노동부로선)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난 30년간 근로감독을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기존의 최저임금 위반 결정 방식을 정당화하려다 보니 근로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것을 명문화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기본급을 계산하기 위한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을 계산하는 방식이 다르고 노동부가 이를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면서 "노동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니 바뀐 시행령에 따라 최저임금 위반 소송이 제기돼 사법부가 다시 판결할 때까지 1년 반쯤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업계는 시행령이 개정되면 내년도 최저임금이 사실상 8350원이 아닌 1만20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소상공인업계는 그동안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지침으로 말미암아 시장에는 법정 최저임금과 달리 주휴수당이 포함된 실질 최저임금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김 이사장은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되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시장에 존재했지만, 노동부가 부인했던 실질 최저임금의 존재가 인정되는 셈"이라며 "내년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