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전략적 진출의 함의경협 총대… 위태로운 환경속 악전고투연 3000억~4000억 날릴 판… 수소 프로젝트도 먹구름경제적 손실 외 외교안보 전략 실패 치명적
  • 2012년 5월, 중국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은 귀국하지 않고 극비리에 미얀마 수도 네피도로 향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이후 한국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베이징까지 수행한 기자들은 물론, 핵심 참모를 제외한 청와대 직원들도 몰랐던 행보였다.

    전두환 대통령 암살시도와 황금내각으로 불렸던 17명의 수행 장관 및 비서진 목숨을 앗아간 테러 이후 미얀마는 금기의 땅이었다. 천안함, 금강산 사태에 이어 북한의 핵실험이 절정이었던 그 때 미얀마라는 위험지역을 비밀리에 찾은 것은 이 대통령으로서도 일종의 도박이었다.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동향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등 첩보에 만반을 준비한 작전이었다"고 했다.

    미얀마를 찾은 이 대통령은 테인 세인 대통령과 아웅사 수치 여사를 잇따라 만나고 미얀마 민주화와 양국간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로 신용카드 조차 통용되지 않는 미얀마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아픈 상처를 가진 한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포스코의 미얀마 진출이었다. 불확실성 리스크에 대기업들이 주저하니 포스코가 떠밀리듯 삽을 펐다. 미얀마 경제지주사(MEHL)과 합작사업을 통해 철강산업을 시작했고, 국영 석유기업 모지(MOGE)와 가스전 개발에 합의했다. 다음해인 2013년 상업생산을 시작한 미얀마 가스전은 하루 5억 입방피트(ft³)의 가스를 중국과 미얀마에 공급하고 있다.

    2015년 아웅사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미얀마와의 관계회복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 결과에 불복한 군부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졌고 미얀마는 다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악의 3대 축이었던 과거로 회기하고 있다.
  • ▲ 2012년 미얀마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DB
    ▲ 2012년 미얀마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DB
    위태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현지에 이미 진출한 포스코 입장은 난감하다. 국제 인권기구가 쏘아붙이는 주장대로 군부로 들어가는 자금줄을 끊기 위해 사업철수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 피해는 천문학적 규모다. 20년간 가스전 개발에 쏟은 1조원에 가까운 투자비용은 물론, 연간 3000억~4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이 고스란히 날아갈 판이다. 포스코의 향후 30년간 수소 프로젝트에도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손실보다 말못할 속사정도 크다. 이 전 대통령이 위험과 비난을 무릅쓰고 미얀마에 손을 내민 것은 단순한 해외 자원개발과 미얀마 시장 진출을 위한 비지니스적 시각이 아니었다.

    아웅산 테러 이후 북한과 관계를 단절한 미얀마는 이후 물밑으로 친교를 계속 쌓으며 2007년에는 협력관계로 돌아섰다. 지금까지도 북한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유지 중인 미얀마는 외교안보 전략상 반드시 '우리편'으로 돌려야 하는 국가다. 또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태국,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리적으로도 전략적 요충지다.

    세간에서는 포스코의 사업철수를 경제적 손실로만 헤아리고 있지만, 실질적인 손해는 외교안보에서 더 치명적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실에서 일한 한 실무관은 "MB정권의 해외 자원개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했지만 미얀마 진출에 대해서는 일절 자극하지 않았다"며 "미얀마와의 외교관계는 동북아 균형 유지에 결정적인 축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미얀마를 향한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군용물자 수출 금지는 물론 현지 교민과 기업 전원 철수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제재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영국 외에 주요 주변국들이 말을 아끼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전원철수라는 극단적 선택은 앞으로 미얀마와 어떤 교류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미얀마 민주화와 그 열망을 외치는 국민들의 인권은 중요하다. 우리 기업의 경제적 손실보다 앞선다는 주장은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의 외교안보 전략을 포기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북한을 견제하고 통일로 나아가는데 미얀마는 필수적인 교두보다. 모두가 냉정히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는 이 때 왜 정부가 나서서 미얀마 군부를 자극하고, 정치권은 포스코의 현지 사업중단을 촉구하는지는 살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