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합의문에 의정합의 묵살?… 醫, 정부 행보 맹비난 의사 없이 합의문 작성 두고 정치적 거래 의혹도 제기전문간호사 개정안 입법예고 두고 의사-간호사 갈등 구조
  • ▲ 지난 2일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의사 증원 문제를 포함한 노정합의문에 서명했다. ⓒ보건복지부
    ▲ 지난 2일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의사 증원 문제를 포함한 노정합의문에 서명했다. ⓒ보건복지부
    지난 2일 새벽 보건복지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보건의료 근간을 아우르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며 간호사 등 파업은 막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의사를 제외한 채 ‘의사 증원’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 개정까지 논란이 되며 의사-간호사의 갈등 양상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의 교통정리가 필요한데 오히려 정부가 분란을 만든 측면이 있어 쉽게 해결책이 나오기 어려운 분위기다.

    ◆ 의정합의 물살? 의료계 불만 가중 

    6일 의료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노정 합의문에 담긴 ‘의사 증원’ 문제가 의사사회에서 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복지부가 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공수표를 남발했으며 이로 인해 갈등의 씨앗이 파생됐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노정 합의문에 포함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 의사 증원’ 항목에 대해 “의사 단체와의 논의 없이 합의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며 “순간적인 미봉책이 아닌 의료환경과 제도개선을 약속한 지난 의료계와의 9.4 의정합의문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 역시 6일 입장문을 내고 “노정합의가 의료 정상화나 노동자 권익 보호와 무관하고 오히려 피해와 부작용만 양산한다”면서 폐기를 요구했다.

    병의협은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 정책을 요구했다”며 “이는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이고 이번 합의가 정부와의 정치적 거래임을 자인하는 증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노정 합의에 담은 내용에 앞서 지난해 9.4 의정합의문을 묵살하는 복지부의 처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해당 합의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합의문에 ‘의정 논의’를 거치겠다는 문구를 정확히 담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 합의문에는 “의정 및 사회적 논의를 거쳐 지역, 공공, 필수분야에 적당한 의사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진료환경과 근무여건 개선방안을 마련하면서 공공의사인력 양성,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포함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마련, 추진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의사 단체 참여 없이 의사 증원을 다뤘고 이에 합의했다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 전문간호사 개정안 두고 의사-간호사 갈등 

    논란은 노정 합의에 담긴 의사 증원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복지부가 지난달 2일 입법예고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두고 의사-간호사간 갈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전문간호사의 분야별 업무 범위를 규정해 전문간호사 자격 제도를 활성화하고 전문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신설하고자 마련됐다.

    이에 따르면 전문간호사들은 ‘의사의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또는 ‘지도하에’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먼저 의협은 “이 개정안이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등 의사 고유의 의료행위를 침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는 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인데 개정안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직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지도’라는 의료법상 개념과 별개로 ‘지도에 따른 처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는 의협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간협 측은 “전문간호사의 업무 중 ‘진료의 보조’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는 게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의사와 간호사 사이 업무 관계에 있어 협력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업무 영역의 변경을 수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애초에 의사가 지도와 처방을 할 수 있는 주체이므로 ‘지도에 따른’ 또는 ‘지도하에’ 있는 간호사는 단독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협은 전문간호사 개정안과 관련해 의료계 단체와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간협 역시 오는 13일까지 관련 개정안 시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