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재판에 갇혀 자유로운 경영활동 제약반도체-M&A 미래 불투명… 이재용 부회장 리더십 절실국민 10명 중 7명 사면 동의… 정부,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길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표정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5년 만에 나선 미국 출장이었지만, 풀어야 할 숙제만 잔뜩 들고 온 모습이었다. 삼성을 둘러싼 환경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문재인 정권 들어 국정농단에 연루돼 숱한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부터 현재까지 6년간 재판에 참석한 횟부만 125회 이상이다. 한 달에 2번 꼴로 재판을 받은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재판까지 받고 있다. 이 재판의 경우 국정농단보다 사안이 훨씬 복잡한데다 증거기록도 방대해 길게는 4~5년의 시간이 걸릴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취업제한' 적용으로 자유로운 경영활동은 사실상 어렵다.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를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은 물론 대내외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 활력을 위해서라도 삼성의 활발한 투자와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위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발표했지만, 파운드리는 글로벌 1위 대만의 TSMC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력사업인 휴대폰 사업의 경우 애플과 중국업체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기술적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거나 새로운 도약을 꾀할 수 있는 대형 M&A(인수합병)도 2016년 하만이 마지막이다. 삼성에 있어 현재는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전략을 마련하고 실제 투자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서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기해 글로벌 산업 질서 재편에 적응하지 못하면, 현재의 위상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시장 격변기에는 100년 기업도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삼성의 경쟁력 저하는 삼성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 및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주요 리더들과의 네트워킹 구축에는 '오너 경영인' 없인 힘들다. 오랜 기간 지속 노력해 쌓아온 오너의 산업계 인적 네트워킹은 단절시 회복이 어렵고, 전문경영인이 역할을 대신하기 어렵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글로벌 IT기업 총수이자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가 위기 때마다 기여해 왔으며, 향후에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작년 11월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7월 선밸리컨퍼런스 참석 이후 5년 4개월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삼성의 총수 자격으로 현지 기업인들은 물론 워싱턴D.C의 핵심 정계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노력과 한미 양국의 우호 증진에 기여하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층 높아진 위상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숱한 악재를 딛고 올 1~3월 삼성전자는 77조 매출을 기록하며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웃지 못하고 있다. 대만 TSMC가 올 투자 목표를 삼성의 두 배인 55조원을 쏟아 부을 준비를 마쳤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텔 역시 타워세미컨덱터를 인수하며 판운드리 시장 경쟁에 뛰어 들었고, 국내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하면서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잔치 분위기다.

    경쟁사들이 앞다퉈 투자와 M&A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법리스크에 손발이 묶인 삼성은 투자도, M&A도 제자리 걸음이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맥을 못추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사면과 관련 "국민들의 지지나 공감대 여부가 우리가 따라야 할 판단 기준"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 사면을 찬성하는 의견이 '10명 중 7명'에 달한 만큼, 이제라도 사면·복권에 대한 전향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