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달러채 6.5억불 상환유예 만료… 디폴트 '갈림길'매달 찾아오는 위기…보유외환 많지만 서방 제재에 동결"디폴트 선언해도 영향 제한적… 한미 통화스와프 필요"
  •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연합뉴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아슬아슬한 국가부도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보유외환은 많지만 서방의 제재로 거래가 막힌 탓이다. 당장 4일 상환 유예기간이 끝나는 만기 국채 이자 등 6억5000만 달러(8200억원쯤)를 갚지 못하면 104년만에 처음으로 국가부도 선언이 현실화하는 등 위태로운 처지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으면 우리나라도 외환시장 등에 여파가 미치겠지만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4일 달러채 상환유예 만료…러 "갚았다" 주장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러시아가 발행한 달러 표시 국채 2건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환의 유예기간이 4일 만료된다. 애초 지난달 6일이 만기였지만 30일간 상환이 유예됐다.

    러시아가 갚아야 할 돈은 올해 만기 국채의 원금과 이자 5억6480만 달러, 오는 2042년 만기 국채 이자 8440만 달러 등 6억5000만 달러 상당이다. 이를 갚지 못하면 볼셰비키 혁명 이듬해인 1918년 이후 104년만에 대외 채무를 불이행(디폴트)하게 된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자금흐름이 크게 경색된 상태다. 지난 2월27일(현지 시각) 주요 7개국(G7)은 공동성명에서 러시아 일부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SWIFT는 1만1000개가 넘는 세계 금융기관이 결제 주문을 위해 쓰는 전산망이다. 여기서 배제되면 러시아 금융기관은 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으로 통한다.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를 통해 이번에 갚아야 할 금액을 결제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미 재무부 승인을 받지 못한 JP모건이 송금 처리를 거부하면서 디폴트 경고등이 켜졌다. 이에 러시아는 국채 보유자들에게 자국 통화(루블화)로 이자 등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을 감독하는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CDDC)가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해 달러 대신 루블화로 상환하는 것은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고 판정하면서 국가부도 위기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만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달 29일 국채 2건과 관련해 이자와 원금을 대행사인 미 씨티은행 런던지점에 달러화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이 맞다면 러시아로선 당장 발등의 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 지적한다. 블룸버그통신은 2일 오후까지 유럽 결제기관중 대금을 받지 못한 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 ▲ 루블화.ⓒ연합뉴스
    ▲ 루블화.ⓒ연합뉴스
    문제는 서방의 금융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가 언제든 불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디폴트 위기는 지난 3월16일 달러 채권 이자 1억1800만 달러(1462억원쯤)를 갚아야 할 때부터 제기됐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13일부터 러시아가 디폴트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1월말 기준으로 러시아가 보유한 외화는 6302억 달러다. 중국(3조2216억 달러), 일본(1조3859억 달러), 스위스(1조926억 달러)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서방이 SWIFT 제재 카드를 꺼내면서 이 돈 대부분이 사실상 묶인 상태다. 외화보유액은 많지만 접근이 어려워진 것이다. 현재 러시아의 가용 외화보유액은 300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고 알려졌다.
  • ▲ 러시아 중앙은행.ⓒ연합뉴스
    ▲ 러시아 중앙은행.ⓒ연합뉴스
    ◇EU 러시아 '돈줄' 원유 금수 조처 '만지작'

    국제경제 전문가 대부분은 러시아의 디폴트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거라는 견해다. 부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지금도 상당부분 리스크가 증가한 상태여서 디폴트 파장이 제한적일 거라고 설명한다. 금융시장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다시 맺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이 현실화하면) 국제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우리도) 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서 받아야 할 돈은 1210억 달러(150조원쯤) 정도다.

    성 교수는 "현재도 리스크가 증가한 상태로 디폴트에 가깝다"면서 "이미 상당부분 (시장에) 반영됐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국가부도 사태가 닥치면 (우리) 외환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다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충격이 덜할 수 있게 한미 통화스와프가 다시 체결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화스와프란 외환위기 등 비상시에 자국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차입할 수 있도록 약속하는 계약이다. 외환보유고 이외의 외환유동성을 확보하는 추가적 수단인 셈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때 한국은행과 미 연준이 맺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는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데 크게 한몫했다. 당시 한은은 통화스와프를 기초로 외화대출을 시행해 기업에 달러를 공급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지난달 5일 현재 4578억1000만 달러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한 9300억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해 10월말(4692억1000만달러)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를 보인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도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익스포저(위험 노출)가 적어 (디폴트를 선언해도)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상황이 누적되면 은근히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단기간에 엄청난 충격이 오진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석유, 곡물은 물론 어업 관련 분야에서 예상 밖의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1998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급 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완전한 파산을 선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적인 공급망 차질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면서 산유국인 러시아 경제가 서방의 제재에도 안정화되는 모습"이라며 "미국의 돈줄 죄기와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금지 등 추가 제재가 변수가 되겠지만, 과거처럼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EU는 수입 원유의 25%,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돈줄'로 꼽힌다. EU는 오는 8월부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처는 EU 회원국마다 견해가 달라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오스트리아·그리스·슬로바키아는 회의적이고 헝가리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만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독일이 대러시아 제재 동참을 압박하는 안팎의 여론에 밀려 강경론으로 돌아서면서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금수를 포함한 6차 제재안이 마련될 거라는 전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