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차등지급 충돌… 勞 "소모적 논쟁" vs 使 "OECD 13개국 시행"결정기준도 공방… "가구생계비 타당" vs "비혼단신생계비 국제표준"勞 "물가폭등" 대폭인상 군불… 使 "코로나 전부터 어려워·최근 가중"
  • ▲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연합뉴스
    ▲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노사 간 샅바싸움이 9일 본격화한 가운데 노동계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비혼단신 생계비' 대신 '가구 생계비'를 주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경영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반발했다.

    어느 해보다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업종별 차등적용과 관련해서도 노사는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도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노사는 이날부터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단위를 시급으로 할지 아니면 월급으로 할지, 지역별·업종별 차등지급 여부,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가장 먼저 노사는 최저임금 결정단위를 기존 관례대로 시급으로 하되 월급 환산액(월 209시간 기준)을 함께 적기로 표결 없이 결정했다.

    하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는 이날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최초 제시안을 내놓는 대신 '가구 생계비'를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비혼단신 가구는 전체 가구의 9.8%, 인구 대비 3%대에 불과해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면서 "비혼단신 생계비만을 결정기준으로 검토할 게 아니라 가구원이 여러 명인 실태를 반영해 가구 생계비를 핵심적인 결정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산출한 올해 '가구 유형별' 적정 생계비는 시간당 평균 1만5100원, '가구 규모별' 적정 생계비는 시간당 평균 1만4066원이다.

    반면 경영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반대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며 "비혼단신 근로자는 세계 표준이자 30년간 유지돼온 심의 기준"이라고 반발했다.
  • ▲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박준식 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박준식 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경영계는 올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업종별 차등지급과 관련해 필요성을 강조했다. 류 전무는 "어려운 경제 환경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힘겹게 버텨온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에게 희망을 주려면 최저임금 안정이 필요하다"며 "업종별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의 수용성 제고 측면에서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이미 중위임금 대비 62%에 달하는 데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이 15.3%이고 업종에 따른 미만율 격차가 최대 52.9%라며 차등적용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류 전무는 "OECD 회원국 중 13개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나이·지역·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노동계는 차등적용이 일부 취약업종에 저임금의 낙인을 찍고, 지역별 소득 불균형을 초래한다며 반대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오랜 기간 반복되는 논의 끝에 이미 결론이 난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그만하자"고 일축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논쟁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차등 적용이 이뤄진 것은 최저임금제 도입 첫해인 1988년 한 번뿐이다. 당시 업종을 2개 그룹으로 나눠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했다.
  • ▲ 지난 8일 오후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소상공인 결의대회 모습.ⓒ연합뉴스
    ▲ 지난 8일 오후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소상공인 결의대회 모습.ⓒ연합뉴스
    이날 노동계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거론하며 대폭 인상을 위한 군불을 지피고 경영계가 발끈하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얼마로 할지는 논의가 미뤄졌다. 노동계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상황을 들어 올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태도다. 한국노총은 일찌감치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8.5% 올려야 한다고 밑밥을 깔아왔다. 이는 2018년(9.2%) 이후 4년 만에 최고 인상률이다. 민주노총은 한발 더 나아가 인상률 목표치를 10%까지 제시한 상태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핵심 결정 기준으로 생계비 재조명' 토론회에서 시급 1만1860원(월급 환산액 247만9000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이 사무총장은 "통계청이 발표한 5월 물가는 5.4%로 14년여만의 최고치"라며 "경제의 악순환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은 생활비를 줄이려고 해도 더는 줄일 수 없는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다. 이번에 어느 해보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설명으론 지난 2월까지 월급쟁이 누적 명목임금은 1년 전보다 29만4000원(7.5%) 늘었다. 하지만 물가 상승분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14만5000원(3.7%) 증가하는 데 그쳤다. 명목임금 증가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경영계 일각에선 최저임금 동결까지도 언급하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급격히 올린 최저임금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은 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최근 경기점검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47%쯤이 코로나19 이전보다 경영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37%쯤은 전망도 악화할 걸로 예상했다"면서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린다면 중소기업, 소상공인, 근로자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국내 임시·일용직 근로자는 평균 96.6시간을 일하고 171만원의 임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지난해 최저임금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만7701원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산술평균임을 고려해도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8720원)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노사는 오는 16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전원회의를 열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