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원 규모 전환우선주 인수 검토했지만 불참키로주요주주와 시민단체 반발 의식한 결정으로 해석이호진 전 회장의 사재출연 요구도 거세지는 상황
  •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룹 총수를 위해 다수 주주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당초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는다. 

    태광산업은 전날 늦은 시각 입장문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고 현재 보유중인 가용자금을 활용한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해왔다”며 “하지만 상장사로서 기존 사업 혁신과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인수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달 1일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을 이유로 5년 전 발행한 5억달러 규모 외화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연기, 시장을 혼란에 빠트린 바 있다. 이후 금융당국까지 사태 수습에 나서면서 5600억원 가운데 은행들이 흥국생명의 환매조건부채권(RP) 4000억원을 매입해주고, 태광그룹이 1600억원을 지원해 급한 불을 껐다.

    논란은 은행들이 앞서 매입한 환매조건부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흥국생명이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태광그룹이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회장(56.3%)을 비롯한 태광그룹 대주주 일가와 특수관계인 등이 지분 100%를 보유했지만,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을 단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트러스트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 13일 태광산업 이사진에게 보낸 내용증명을 통해 대주주가 아닌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했다. 또한 이사회가 유상증자 참여를 승인할 것에 대비해 이사회결의효력정지가처분과 이사회결의무효확인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와 다름없는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태광산업 주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태광산업 주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상법상 금지된 신용공여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성명서를 내고 “이 전 회장이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어려운 선택지 대신 태광산업에게 그 책임을 떠 넘기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지원에 나설 경우 태광산업의 기업가치와 일반주주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거센 반발이 잇따르면서 결국 태광산업은 유상증자 참여 검토를 전면 백지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거센 사회적 비판과 우려에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원을 철회했지만, 이호진 전 회장의 개인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태광산업이 나섰다는 본질은 여전하다는 점에서다. 향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주주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검토를 중단했지만 지금과 같은 일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면서 “흥국생명 사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자 한다면 이 전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 일부를 매각하거나 담보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직접 해결해야하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한편, 흥국생명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28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새로 발행되는 주식은 전환우선주 297만주다. 태광그룹 계열사를 신주 배정자로 지정해 오는 29일까지 유상증자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