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 4.5일제' 노동계 확산 경총 "가장 우려되는 입법"생산성 확대 방안 뒷전으로AI-로봇 투입 스마트 팩토리도 겉돌아
  • ▲ 지난해 8월 현대차 노조가 쟁대위를 개최한 모습. ⓒ현대차 노조
    ▲ 지난해 8월 현대차 노조가 쟁대위를 개최한 모습. ⓒ현대차 노조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올해 단체교섭 요구안으로 주 4.5일제 시행을 선정했다.

    재계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노동 유연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근로 시간 감소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까 우려가 깊다. 특히 글로벌 차량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차량 증산 계획을 논의하는 등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100%) 정액 인상, 순이익의 30% 성과급, 상여금 900% 인상, 매주 금요일 4시간 근무제(주4.5일제) 도입 등이 골자인 올해(2024년도) 단체교섭 요구안을 사측에 오늘 전달한다. 이 요구안에는 연령별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한 정년 연장, 퇴직자 수준의 신규 인원 충원 등도 담겼다.

    기아 노조는 현대차에 앞서 올해 노사 고용안정위와 임단협 안건을 확정하고, 지난 8일 상견례를 진행했다. 기아 노조도 올해 단체교섭에 주4.5일제 시행을 포함했으며, 주4.5일제 시행을 공약한 더불어민주당 등에 법제화 추진을 요구하는 공문까지 발송했다.

    현대차 노조는 5월 중 회사 측과 교섭에 나선다. 업계에서는 노조 측이 제시안 요구안이 과도한 만큼 이번 노사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요구안의 핵심은 매주 금요일 4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재계는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제기한 '주 4.5일제'가 국내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에 우려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8일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고용노동 입법 설문조사'에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가장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입법으로 '주4일제 또는 주4.5일제'가 꼽혔다. 또 응답기업의 84.6%가 제22대 국회에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 노동개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내 제조 대기업 중 주 4.5일제를 도입한 경우는 없어서 노조 요구안이 시행된다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인력 중요성이 큰 제조업에서 당장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근로 시간 감축 이전에 생산성 향상 및 효율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 문을 연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 품질 점검 ‘셀’에서 로봇 개와 작업자가 자동차 조립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로봇 개가 탑재된 카메라로 조립 부분을 촬영하면, 로봇 개와 연결돼 있는 AI(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해당 부분이 제대로 조립됐는지 판별한다.ⓒ현대차
    ▲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 문을 연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 품질 점검 ‘셀’에서 로봇 개와 작업자가 자동차 조립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로봇 개가 탑재된 카메라로 조립 부분을 촬영하면, 로봇 개와 연결돼 있는 AI(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해당 부분이 제대로 조립됐는지 판별한다.ⓒ현대차
    근로시간 단축의 동력은 기술 혁신이다. 현대적 대량생산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말이다.

    지금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생산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주요 기업 AI 도입 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85.7%가 AI 활용으로 업무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는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근무 인력 확대라는 후진적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일자리나 일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노조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주 4.5일 근무를 주장하며 현대차 노조 측은 연령별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한 정년 연장, 퇴직자 수준의 신규 인원 충원 등을 포함시켰다.

    현대차도 이런 강성 노조 문화에 혁신의 한계에 부닥치며 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허브를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에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라는 이름으로 구축했다.

    HMGICS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지고 '셀'이라 불리는 조립 룸에서 로봇과 사람이 협업해 다품종 차량을 생산한다. 차체와 부품 이동은 모두 로봇이 하고, 네 발로 걷는 로봇 개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조립 품질을 확인한다. 차량 생산에 투입된 근로자는 50명에 불과한 반면 로봇은 200대가 넘는다.

    현대차그룹은 HMGICS에서 개발, 실증한 제조 플랫폼을 오는 4분기 가동 예정인 미국 조지아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한국 울산 EV 전용공장 등 글로벌 전기차 신공장에 단계적으로 도입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새로운 근무 형태를 발 빠르게 도입했던 IT업체들 조차 생산성 하락을 이유로 다시 기존 근무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며 "근무시간 단축 전에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기술 도입에 대한 노조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