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미분양주택 10년만 최대…연내 10만가구 넘을수도미분양 전체 84% 지방에 집중…대구 신규사업 전면중단작년 상반기에만 362개사 폐업신고…2013년 이후 '최다' 전문가 "미분양 매입시 세제혜택 등 지원책 필요" 제안
  • ▲ 서울 성북구 한 재건축 현장. ⓒ성재용 기자
    ▲ 서울 성북구 한 재건축 현장. ⓒ성재용 기자
    정부의 1·3대책후 주택거래량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부동산경기 반등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전국 미분양주택 규모가 최근 10년새 최대규모인 7만5000가구를 돌파한데다 곧 10만가구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중견·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줄도산 공포'가 엄습해 오고 있다. 

    8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근래 미분양주택 위험성은 적체된 물량보다 증가속도 및 편중성에 있다.

    전국 미분양주택은 글로벌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16만6000가구로 정점을 찍었다가 부동산경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2021년 하반기 1만4000가구 안팎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는 다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월 2만가구를 넘어선 미분양 규모는 7월 들어 3만가구대 진입했고 9월에 4만가구를 돌파했다. 11월과 12월은 각각 한달만에 미분양주택이 1만가구씩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정도 속도라면 정부에서 미분양 한계점으로 낙인한 10만가구도 곧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저조한 초기분양 상황이 현재와 같이 58%대로 낮게 유지되면 연내 미분양주택이 10만가구를 넘을 수 있다"며 "올해 미분양예상주택은 약 12만5000가구로 미신고물량까지 고려하면 더 늘어날 수 있으니 철저한 사전관리 및 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분양이 계속 쌓이면 집값이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기대 때문에 거래절벽이 계속되고 분양경기가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아파트를 지어도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면 부동산시장으로 자금이 흘러오지 않게 돼 유동성 위기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레고랜드사태와 같은 부동산PF 부실우려로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거나 심지어 부도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미분양 문제가 실물경제로 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특히 지방 건설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 지난달 미분양주택 추이를 보면 전체 84%가 지방에 몰려 있다. 정부가 1·3대책 등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풀고 청약문턱도 낮추면서 수도권 분양경기가 먼저 회복세를 타고 지방은 더 깊은 미분양 늪에 빠졌다.

    청약시장 양극화와 심해지면서 지방에 기반을 둔 중소·중견건설사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방에서 미분양물량이 가장 많은 대구(1만3565가구)에서는 지난달 신규주택사업 승인을 전면 중단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승인을 중단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미분양관리지역을 지정해 분양물량을 조절한다.

    미분양 확대는 부동산PF시장 '돈맥경화'로 이어져 건설사 줄도산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PF사업은 개발사업 미래가치를 담보로 대출이 이뤄지는 만큼 안정적인 사업성이 투자의 중요한 척도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분양사업에 미래사업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PF대출이 조기상환되거나 차환이 막힐 공산이 크다.

    PF시장이 얼어붙으면 건설사 신규사업 및 자금 유동성에 타격을 준다. PF사업은 대체로 자금력과 신용도가 부족한 시행사 대신 시공사가 보증을 서 이뤄진다. 차환에 실패하면 건설사 보유자금으로 사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다. 시행사가 자금난에 부도가 나면 보증계약을 맺은 건설사가 사업을 떠안아야 한다.

    실제 건설사 폐업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을 보면 2022년 상반기 기준 종합건설사 폐업신고(변경·정정·철회 포함)는 36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404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시공능력 202위)과 경남 창원 중견종합건설사 동원건설산업(시공능력 388위)도 포함됐다. 최근에는 전국 시공능력평가 83위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회생절차에 돌입하기도 했다.
  • ▲ '강원강릉 금호어울림 올림픽파크' 견본주택. ⓒ금호건설
    ▲ '강원강릉 금호어울림 올림픽파크' 견본주택. ⓒ금호건설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손실을 보더라도 건설사가 손을 떼는 경우도 발생했다.

    대우건설은 2월초 울산 동구 사업장 시공권을 포기했다. 최근 분양시장이 위축된데다 고금리 부담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공권을 포기하는 대신 변제한 금액은 440억원이다. 시간을 끌수록 손해라는 판단에 공사를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미분양 확산세가 멈추지 않으면 건설사 시공권 포기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주택업계는 정부가 나서서 조속히 미분양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미분양이 나면 낙인효과로 입주자를 모집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며 "업계 미공개물량을 고려하면 실제 미분양물량은 정부 집계치 2배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유동성 지원과 추가 규제완화 등 시장개입을 통해 주택경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미분양 대책을 직접 제시하면 건설사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특정 민간기업의 수요예측 실패와 방만경영 책임을 공적자금으로 보상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하락세를 타고 있는 집값을 정부가 세금으로 떠받치면 무주택자의 내집마련 기회를 빼앗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말 취약계층을 위한 전세매입임대사업 일환으로 준공후 미분양아파트인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36가구를 총 79억원에 매입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건설사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정부도 '아직 개입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현재 미분양은 건설사 가격할인 등 자구노력으로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일시적인 마찰성 미분양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도 아직 정부가 미분양 문제에 직접 개입할 시점이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부동산 경착륙 방지를 위해 보완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미분양아파트가 늘어나면 PF대출 이자나 원금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가 크게 확산할 것"이라며 "주택경기를 고려할 때 미분양 해소가 단기적으로 쉽지 않고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건설업계 자금난뿐 아니라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미분양을 직접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부담이 되면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미분양을 살때 취득세 감면과 양도소득세 면제혜택을 주는 등 다른지원책을 주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덕례 실장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시장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미분양 물량들이 2년반후 준공후 미분양으로 고스란히 나올 것"이라며 "준공후 미분양은 원가가 다 투입된 이후기 때문에 사업자 유동성 문제가 생겨 심각성이 큰데 그렇게 되기전에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민간과 공공 모두 기존 제도내에서 자구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