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운용·신한운용, 잇따라 성과연동형 상품 선봬ETF 열풍에 밀린 공모시장 위축…차별화 상품으로 틈새공략"투자자 실익 '글쎄'…단기 운용평가 분위기 조성"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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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윤 기자
    상장지수펀드(ETF) 열풍에 밀려 공모펀드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는 가운데 운용업계가 펀드 운용 성과를 측정해 수익을 낸 만큼 보수를 가져가는 성과연동형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성과 연동펀드가 침체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큼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제도는 아니라는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4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VIP자산운용은 절대성과 연동형 공모펀드인 'VIP한국형가치투자'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직전 1년 펀드 수익률에 따라 다음 분기 운용보수가 자동으로 변한다. 기본운용보수는 연 0.8%이지만 손실이 날 경우 회복 시까지 운용보수를 아예 받지 않는다. 성과에 따라 운용보수는 최대 연 1.6%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저조한 성과에도 일정 수준의 보수를 계속 떼가는 기존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사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처음으로 성과연동형 상품을 선보인 건 신한자산운용이다. 지난달 13일 이 회사는 '신한얼리버드성과연동보수 펀드'와 '신한중소형주알파성과연동보수 펀드'를 출시했다.

    신한얼리버드 펀드의 경우 처음 1년 간은 0.45%의 보수를 받고, 그 이후부터는 직전 1년 성과를 기준으로 6개월마다 보수가 변한다. 수익률이 벤치마크인 코스피지수 대비 4.5%포인트 아래로 내려가면 보수는 0원이다. 반대로 4.5%포인트 이상 상회하면 보수는 0.9%까지 올라간다.

    신한중소형주알파 펀드는 코스피중형주지수를 벤치마크로 삼으며 처음 1년간 운용보수는 0.44%다. 수익률이 좋을 경우 보수는 최대 0.88%까지 상승한다.

    운용사들이 최근 잇따라 성과와 연동된 펀드를 출시하는 건 공모펀드 시장을 떠나는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공모펀드 순자산은 2021년 211조원에서 지난해 197조원으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ETF 시장은 52조원에서 지난해 78조5116억원으로 크게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머니마켓펀드(MMF)를 제외하면 펀드 시장 규모는 2020년 102조원, 2021년 107조원, 2022년 101조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와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결합증권을 제외하면 일반 공모펀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29조원에 불과하다.

    ETF 시장의 급격한 확대가 공모펀드 타격을 준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무엇보다 낮은 수익률이 공모펀드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3299개) 중 1년 수익률이 플러스를 기록한 상품은 5%(161개) 남짓이다. 수익률이 저조한데다 보수마저 부담스러운 공모펀드 시장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이사는 "공모펀드가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 중 하나가 고객이 손실이 나도 운용사는 보수를 꼬박꼬박 떼어간다는 점"이라면서 "이번 펀드는 손실이 날 경우 회복될 때까지 운용보수를 받지 않음으로써 고객에 대한 책임감과 수익률에 대한 자신감을 동시에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운용사의 성과 책임을 높인 공모펀드가 시장 활성화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업계 일각에선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하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 입장에선 수익을 내지 못할 때 보수를 받지 않겠다는 전략 자체가 실익이 없을 수 있다"면서 "투자자를 펀드로 이끄는 요인은 수수료가 아닌 수익률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별화된 상품으로 시장의 틈새를 노릴 순 있지만 궁극적인 시장 활성화를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면서 "회사 자체적으론 그렇게 판단해 관련 상품 출시엔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성과연동형 운용보수 상품이 자칫 장기투자 문화 정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낸 공모펀드들은 장기투자를 통해 이뤄졌다"면서 "성과연동형 운용보수 도입은 특성상 자칫 단기운용 평가를 우선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공모펀드 시장이 성공하려면 3년 이상 장기 성과 평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