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상당수 '자본잠식'1.4조 부실 가능성… 캠코 1조 펀드 조성이중 대비… 27일 대주단 출범
  • ▲ ⓒ국토교통부. <연도별 건설업체 수 및 부도업체 수>
    ▲ ⓒ국토교통부. <연도별 건설업체 수 및 부도업체 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설이 계속 시장을 맴돌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일부 신용평가사와 부동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반기 위기설'이 제기되는 등 시점도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며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고 있다.

    하반기 위기설의 주요 근거는 시행사 부실화다. 부동산 호황기의 정점이었던 2021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사업 용지를 사들인 시행사 중 상당수가 올 하반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다.

    자본력이 취약한 시행사들은 대부분 제2금융권으로부터 고금리로 자기자본의 10배 안팎의 대출을 받아(브릿지론) 땅을 산다. 사업부지를 확보하면 인·허가와 시공사 선정을 거쳐 은행으로부터 정식 담보대출을 받아(본PF) 브릿지론을 갚는 것이 부동산PF의 대략적인 사업 구조다.

    예를 들어 100억원의 자본을 가진 시행사가 제2금융권에서 1000억원을 12%의 이자로 빌려 땅을 샀다면 1년 이자만 120억원이다. 부지 확보, 인·허가, 시공사 선정 등에 문제가 생겨 본PF로 넘어가는 기간이 길어지면 1년도 안돼 자본금을 다 까먹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원자재값과 금리가 올라 부동산 경기가 급랭한 작년 하반기부터 실제로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시행사들이 상당수 올 하반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거액을 빌려준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등 제2금융사들은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 중 50곳 이상이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연계된 저축은행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졌다. 부동산 위기가 금융 위기로 번진 것이다.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당국의 이런 태도는 어떤 근거에 기초한 것일까.

    우선은 건설사들의 몰락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2008년 위기 때는 건설사가 시행사와 한몸이 돼 사업 리스크에 대해 연대보증 등 무한책임을 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현재는 리스크가 금융사와 시행사로 분산돼 있다. 시행사가 자본잠식에 빠져도 시공사(건설사)의 손실은 제한적인 사업장이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종합건설사 부도업체 수는 2008년 131곳, 2009년 86곳, 2010년 78곳 등으로 당시 건설사들이 상당히 큰 타격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음에도 부도가 난 종합건설사는 5곳에 불과하다. 올해도 대한건설협회 공시에 따르면 부도업체 수가 지난달 부산의 1곳에 그치고 있다. 위기설이 제기됐던 롯데건설, 태영건설 등도 현재는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중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작년 레고랜드 사태가 예방주사 역할을 해 건설사와 금융사가 PF 리스크에 대해 상당히 대비를 해놓은 상태"라며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호황기 때 큰 수익이 났기 때문에 브릿지론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더라도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이 상당히 진척돼 '준공후 미분양'이 위기의 주요 원인일 경우 피해 규모도 크고 부실 전이의 위험도 높지만 브릿지론 단계에서 사업이 엎어지는 것은 오히려 손실이 제한적이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브릿지론으로 확보된 용지를 경매나 공매로 처분하면 선순위, 중순위 채권자는 일정 정도 투자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시행사와 후순위 채권자의 경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겠지만 고수익을 위해 고위험을 감수한 만큼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29조9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브릿지론 규모는 약 30조원,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14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전국 5000여 곳 PF 사업장 가운데 300~500곳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실 사업장 규모를 20%로 보더라도 하반기 브릿지론 단계에서 발생하는 부실 여신 규모는 2조8000억원 안팎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0% 정도는 공매를 거쳐 채권 회수가 진행될 것이라 가정하면 브릿지론 단계의 최종 손실 금액은 1조4000억원 안팎이라는 계산에 도달한다. 이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조성하는 1조원 규모 블라인드 펀드로도 충분히 흡수 가능한 손실 규모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발표한 대로 'PF 대주단 협약' 개정을 추진 중이며 오는 27일 협약식이 예정돼 있다. 대주단 협의체에는 은행, 보험, 증권, 여전 등 범 금융권이 참여한다. 스스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시행사나 시공사가 협의체에 'SOS'를 치면 협의체는 만기연장, 채무조정, 신규 자금제공 등의 지원을 실시하게 된다. 단, 시행사와 시공사는 분양가 인하 등 지원에 상응하는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 시행사나 후순위 채권자의 경우 사업 완료 후 이익은커녕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사업 중단에 따른 '시행-시공-금융' 공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운이 좋아 2년 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경우 수익을 기대할 여지도 생긴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 건설사, 금융권 모두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상당한 수익을 거뒀고 돈잔치를 벌여 따가운 눈총까지 받은 바 있다"며 "현재는 상황이 급변한 만큼 이익을 고집하기보다 손실을 나누며 사업을 완성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