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 등에 두루 쓰이는 발암물질… 대체물질 개발 '아직'EU, 2025년 사용규제 결정… 유예기간 둬도 중장기적 리스크정부 "산업계와 동향 공유 등 소통 강화… EU에 입장 전달할 것"
  • ▲ 미국 EPA 과학자들이 과불화화합물을 실험하고 있다.ⓒ연합뉴스
    ▲ 미국 EPA 과학자들이 과불화화합물을 실험하고 있다.ⓒ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오는 2025년 과불화화합물(PFAS) 사용 규제를 검토 중인 가운데 우리 정부와 기업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규제 동향을 파악해 산업계와 공유하는 등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와 기업은 대체물질 개발이 규제의 해법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서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영준 산업정책실장 주재로 EU의 PFAS 사용 규제와 관련한 업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코오롱 인더스트리, 에코프로 머티리얼즈 등 관련 업계 20여 명이 참석했다.  

    PFAS는 탄소와 불소가 결합한 유기화학물질이다.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을 막는 특성이 있어 반도체와 자동차, 섬유, 의료기기, 포장재 등 산업 전반에 두루 쓰인다. 하지만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릴 만큼 쉽게 분해되지 않으며 인체에 축적돼 신장암 위험을 키우고 갑상선 호르몬을 파괴하는 등 유해성이 있다. 발암물질로 분류된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이 대표적이다.

    PFAS에 대한 유해성은 이미 미국의 처벌 사례를 통해 인식이 확산한 상태다. 미국은 일찍이 유해성을 자각해 지난 2002년부터 PFAS 생산과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유해성을 알면서도 20년이 넘게 은폐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최대 화학기업 듀폰·3M 등은 환경오염 등에 관한 여러 소송에 휘말리며 대가를 치렀다. 이들 기업이 내야 하는 합의금 규모는 1조 5000억 원이 넘는다.

    PFAS 규제는 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5개국이 먼저 제안했다. 이에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지난 2월과 3월 공개한 2개의 보고서를 통해 규제 초안을 제시하고 오는 9월까지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미국의 주 정부들도 이런 기조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다. EU는 위해성 평가와 사회경제성 분석 등을 거쳐 내년쯤 최종 평가 의견을 내놓을 예정이다. 사용 규제 여부는 2025년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로서는 사용 규제가 적용될 경우 당장 기업들이 대체물질도 없이 궁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 난감한 처지다.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PFAS는 특히 반도체와 자동체에 많이 쓰인다. 두 품목은 우리 수출의 핵심 품목이다. 반도체는 튜브·필터 등 장비의 구성 요소나 윤활제로 PFAS를 사용한다. 자동차는 제조 전과정에서 주요 부품에 사용한다.

    EU는 갑작스런 사용 금지에 따른 파장을 고려해 용도에 따라 18개월 전환기간을 부여하고, 산업용 기계(5년)와 이식형 의료품 등 개발 장기소요 제품(12년)에는 예외적으로 한시 허용을 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용을 완전 금지하게 돼 업계로선 중장기적인 리스크를 떠안은 셈이다.

    이에 우리 정부와 기업은 규제 동향을 공유하고 소통을 강화하며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부는 규제 동향과 앞으로 남은 절차 등을 업계에 공유했다. 참석한 기업·단체는 정부 차원의 자세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부는 앞으로의 대응과 관련해 먼저 이달 말 '화학물질 규제 대응 세미나'를 열고 업계에 다시 한번 최신의 규제 동향을 전파할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관련 분석 보고서를 발간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개별 기업보다는 협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해 나가자는 방향을 잡고 이에 대한 의견제출 수요조사도 진행한다.

    정부와 기업은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날 산업부는 기업에 대체물질 연구·개발(R&D) 지원을 검토하고, 맞춤형 컨설팅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주 산업정책실장은 "점차 강화하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 우리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응해 수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앞으로 규제가 구체화되면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EU에 우리 정부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