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실차 뒤죽박죽 우려보수적 가정 강요… ±5% 권고 무색KB손보(-0.28%), 한화손보(0.67%) 정확성 우수메리츠(9.29%), 신한라이프(23.12%) 편차 커
  • [편집자주] 현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험사 회계 방법은 IFRS17이다. 우리나라도 회계정보의 유용성과 재무정보 비교 기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0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올해 IFRS17을 처음 도입했다. IFRS17의 핵심은 원칙중심을 기반으로 사업비·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한 자율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섰다. 원칙을 깨고 자율권을 무시한 것은 차치하고 특정회사 편들기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험사들간 이전투구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이 왜 논란이 되는지, 보험사들의 입장은 타당한지 등을 점검해봤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오히려  예실차를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예실차'란 계리적 가정에 따른 예상보험금과 실제 발생보험금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험사들이 세운 각자 계리적 가정의 정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낙관적인 가정을 사용해 실적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킨다며 보수적인 가정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정확한 가정으로 예실차를 줄인 보험사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정확한게 유죄가 되는 셈이다.

    ◆ 정확할 수록 손해?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주요 8개 손해보험사 중 예실차비율이 1% 미만인 곳은 KB손해보험(-0.28%)과 한화손해보험(0.67%) 두 곳이었다.

    이어 DB손해보험(1.97%), 삼성화재(3.27%) 롯데손해보험(4.08%) 순으로 예실차비율이 낮았다.

    반면 메리츠화재 9.29%로 가장 높았고 흥국화재(8.49%)도 8%가 넘었다. 현대해상(-5.32%)은 당국에서 권고하는 기준선인 ±5%에 걸쳐 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은 회사별 가정 체계를 자율적으로 정하는데 예실차가 적을수록 정확한 가정을 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정확도와 별개로 계리적 가정의 보수적 경향이 강한지, 낙관적 경향이 강한지는 예실차 손익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현대해상과 KB손보처럼 손실이 발생했다는 말은 예상 비용을 실제 비용보다 더 낮게 가정했다는 의미다. 손실이 클수록 회사의 가정이 낙관적 혹은 공격적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반대로 계리적 가정의 보수적인 경향이 강할수록 예실차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계리적 가정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진 메리츠화재가 예실차 규모면에서 가장 컸던 이유다.

    당장 2분기부터 보험사들이 보수적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면 오히려 예실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국에서 보험사들의 예실차비율을 5% 미만으로 관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기초가정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도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인데도 당국이 편을 들고 나서면 결국 예실차를 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금감원 타깃이 잘못됐다

    IFRS17 도입 초기 예실차비율은 손보사보다 생보사에서 두드려졌다. 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 타깃이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생명보험협회의 월간통계 공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2개 생보사의 예실차비율은 -2.5%로 집계됐다. 5조2148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5조3452억원이 지급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

    생보사 가운데 예실차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AIA생명으로, 0.39%에 불과했다. 정확도가 높았던만큼 가정의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어 처브라이프(-0.84%), 동양생명(-1.04%), 라이나생명(-1.84%) 등 외국계 생보사가 비교적 낮았다. IFRS17가 국제회계기준인 만큼 준비가 철저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하나생명의 예실차 비율은 -31.01%로 손실이 가장 컸으며 낙관적인 가정을 세운 결과로 보여진다. 이어 DB생명(-25.43%), 한화생명(-18.71%) 등도 예실차 손실이 컸다.

    예실차비율이 높게 나타난 곳 중에서 가정의 보수적 경향이 강한 곳은 신한라이프(23.12%)가 꼽혔다. 신한라이프의 예실차 규모는 약 900억원이다.

    이어 KB라이프도 14.86%의 예실차 이익을 봤고 교보라이프플래닛(-12.44%), 메트라이프(10.33%) 등도 두 자리수대 예실차 비율을 보였다. 당국 권고수준인 ±5%를 넘어서는 곳이 22곳 중 15곳에 달했다.

    ◆ "특정 보험사에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은 부당"

    그럼에도 당국의 가이드라인은 손보사 상품에 집중돼 있다. 실손보험의 계리적 가정, 무·해지보험의 계리적 가정, 고금리 보험의 해약률 가정 등에 보수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손보사들이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서다.

    IFRS17 도입후 주요 손보사의 계약서비스마진(CSM)이 형님 격인 생보사를 앞지르면서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금감원이 밝힌 보험사들의 지난해 보험부채 구성요소 비율을 보면 생보사들의 CSM은 9% 밖에 안되는데 손보사들은 32.4%까지 나온다. 손보사들이 CSM을 크게 가져갈 수 있는 상품군인 장기보장성 보험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어서다.

    결국 당국의 보수적인 가이드라인 제시로 인해 손보사의 실적이 요동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특정회사 편들기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정확도가 높은 회사는 실적 추산을 다시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인 반면 메리츠화재나 신한라이프 등 이미 보수적인 가정을 설정해 예실차 규모가 큰 회사는 영향을 덜 받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한 계리 전문가는 "IFRS17 도입으로 예실차 조정을 위한 계리적 가정의 적정성을 찾아가는 자정기능이 존재함에도 가이드라인 제시는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며 "특정 보험사에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