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반도체 부진으로 드러난 韓 허약한 체력한계 봉착… 경제 버팀목, 갈수록 '활력 잃어'"무역적자 지속, 성장모델 위기 불구 경기회복 주도산업 없다" 글로벌 변화 가속… 선진국, '기술-제품-비즈니스 모델' 혁신 또 혁신
  • ▲ 부산항 ⓒ연합뉴스
    ▲ 부산항 ⓒ연합뉴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이 갈수록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 제조업 전반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은 빠르게 기술·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제조업은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수출은 한국경제의 엔진이었다.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제조업 수출이 주도하는 성장모델이 위기 국면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경기 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이 없다는 점이다. 

    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전국 230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기업경기전망지수(BSI:Business Survey Index)’를 조사한 결과, 기업들의 3분기 전망치는 91로 집계돼 전분기(94)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부문별 BSI도 내수(94→90), 수출(97→94) 모두 부정적 전망이 전분기보다 많아져 하반기 들어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주요기관들의 전망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100이상이면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이고, 100이하면 그 반대다.

    업종별로는 제약(115), 의료정밀(105) 등 바이오산업과 엔데믹 효과가 기대되는 식음료(108), 수주 호조세인 조선(106)이 기준치인 100을 상회했지만, IT·가전(83), 전기(86), 철강(85), 섬유·의류(75) 등 주력 업종들은 100을 크게 하회했다. 상승세를 보이던 자동차(98), 화장품(93), 기계(92) 업종도 3분기에는 부정적 전망이 더 많았다.

    철강(85) 및 비금속광물(78) 업종은 건설경기 불황과 레미콘 수급 차질의 영향으로 경기악화가 전망됐고, 목재·종이(73), 섬유·의류(75), 가구(78) 등 내수업종 기업들도 부정적 전망을 한 기업이 월등히 많았다.

    올해 하반기 리스크로 ▲고물가·원자재가 지속(60.4%), ▲내수소비 둔화(44.3%), ▲수출부진 지속(23.2%), ▲고금리상황 지속(20.0%), ▲원부자재 수급차질(12.6%), ▲고환율상황 지속(12.4%) 등을 꼽았다.

    제조업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최소 내년이 돼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지난 5월 70.9%에서 72.9%로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지난 2019년 48년 만의 최대 감소를 보인 이후 70~72%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제조업 불황은 세계 경기 불황과 기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제조업 경쟁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다. 지난 2000년대 이후 자동차·조선·철강·기계·석유화학·반도체·통신기기 등 한국의 대표 제조업의 성장세가 뚜렷이 둔화되고 있는데, 고부가 시장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기술력에 한참 못미치고 범용 시장에서는 중국에 추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2004년부터 17년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유지했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입은 중국 업계의 추격으로 지난 2021년 결국 선두를 내줬다. 

    석유화학도 중국발 공급과잉에 수익성과 시장 경쟁력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 후반부터 '화학 굴기'의 일환으로 자국 내 에틸렌 등 기초 유분과 중간원료 자급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대규모로 본격화했다. 

    제조업 생산의 10%,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등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업황에 이어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의 투자 확대로 향후 미래를 담보하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경기 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제조업 부활을 이루고 있는 대만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만은 한때 ‘아시아의 추락한 용’으로 불렸지만 2019년 반도체 기업 TSMC가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앞서더니 지난해에는 18년 만에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과 대만은 인구 밀도가 비슷하고 제조업 기반의 수출 중심 산업 구조도 동일해 종종 비교 대상이 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은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앞섰지만,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반도체 치킨게임으로 한국의 추격을 허용했다. 

    그러나 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심이 삼성전자의 메모리 분야에서 TSMC의 비메모리 분야로 바뀌면서 대만의 재도약이 가시화됐다.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안착한 덕분에 TSMC의 기업 가치는 2019년 11월부터 삼성전자를 앞섰다.

    이를 반영하듯 대만 전체 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2013년 29.1%에서 지난해 34.2%로 5.1% 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이 27.8%에서 25.6%로 2% 포인트 넘게 빠진 것과 대조된다. 대만 제조업의 부가가치율도 2020년 32.5%로 한국(28.7%)과 격차를 더 벌렸다.

    산업연구원 전정길 연구원은 "대만의 대중교역에서의 포지셔닝과 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 분야의 정책 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우리나라는 우리와 여러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대만의 높은 산업경쟁력에 대해 다시 분석하고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