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30주년 기념식故 이건희 선대회장 혜안과 철학 조명"이상주의" 비난 속에서도 안내견들 세상에 내보내장애인·안내견 사회적 인식 개선 위한 노력도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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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내다본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혜안과 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30년 전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안내견 사업을 뚝심있게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삼성은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혜안과 철학, 이후 30년에 걸친 삼성을 비롯한 우리 사회 모두의 노력을 조명하며 서로에 대한 감사와 축하를 나눴다.

    이날 행사에는 퍼피워커,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등 안내견의 전 생애와 함께해 온 이들이 함께 했음. 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시각장애인 파트너이기도 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는 '먼 훗날'을 내다보고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 이 선대회장의 혜안과 신념, 그 이후 현재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 등 성과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이 처음으로 개를 기른다고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비록 시작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의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복지 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3년 6월 '신경영'을 선언한 이 선대회장은 같은해 9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설립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다.

    안내견 사업에 대한 이 선대회장의 혜안과 철학은 미발간 에세이 '작은 것들과의 대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선대회장은 ▲안내견 사업에 대한 철학과 신념 ▲사업의 목표 ▲사업 이후 어려움과 성과에 대한 소회를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정리했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이 개를 길러 장애인들의 복지를 개선하거나 사람들의 심성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이런 노력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감으로써 우리 국민 전체의 의식이 한 수준 높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라며 "사회 복지를 완성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며 문화적 마인드다. 장애인 복지 재단이 많이 설립돼 편의를 도모한다고 해도 정작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눈이 차갑다면 그런 사회를 두고 복지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식와 관습을 바꾸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야말로 사회 복지의 핵심이고, 그것이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재투자"라고 강조했다.

    안내견 사업 목표에 대해 이 선대회장은 "첫 번째 목표는 안내견의 직접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 독립된 삶의 의지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안내견 분양 사업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모델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퍼피워킹이라는 자원 봉사 위탁 사육 프로그램을 확산시켜 일반 시민들을 안내견 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더 나아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전파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다"라고 말했다.

    이 선대회장은 "1993년 안내견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불모지에 꽃을 피워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준비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안내견 우점종(안내견으로 가장 많이 길러지는 견종)'인 리트리버는 삼성이 한 마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을 본격화하는 데 1년여의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 선대회장은 "한 마리 안내견이 성장하기까지 수천만, 수억원의 돈으로도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애정의 크기로 퍼피워킹을 해 주는 자원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그 노력을 먹고 자라는 한 송이 국화, 그게 안내견이다"라며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비행기 탑승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과 관련) 1995년 외국 사례와 국제법 조사 자료를 들고 우리 직원들이 쫓아가 항공사측을 설득했다. 안내견의 대중교통 탑승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어 "1996년에는 초등학교 3학년 읽기 교과서에 안내견 설명 내용이 실렸고 1998년에는 안내견의 편의시설 접근권을 보장하는 개정 장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개가를 올렸다"고 밝혔다.

    안내견 사업을 30년간 이어가면서 이 선대회장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과 의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이 처음으로 개를 기른다고 알려졌을 때 일부에서는 사람도 못 먹고 사는 판에 개가 다 무어야 하는 공공연한 비난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차라리 직접 가난한 사람들이나 복지 단체에 기부를 하라는 것이다"라며 "비록 지금은 현실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거나, 바보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십 년이나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마인드를 한 수준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잔잔한 연못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심정으로, 우리는 안내견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세상의 두텁고 완강한 고집과 편견 때문에 안내견 '슬기'나 '대부'나 '태양'이가 더 이상 풀이 죽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계속 내보낼 것이다"라며 "앞으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오해와 편견들에 대항해 나갈 것이다. 무관심과 몰이해의 장벽 너머, 환하게 열린 우리 사회의 미래가 모두에게 현재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까지"라고 말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1994년 첫 번째 안내견 '바다' 이래 매년 12~15두를 분양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0두의 안내견을 분양했고, 현재 76두가 활동 중이다. 일반인 대상으로 한 시각장애 체험 행사 등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2년 세계안내견협회(IGDF)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