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여전히 높아" 파월 발언에 미 10년물 국채 금리 4.99%로 급등고금리 장기화·미 재정적자 확대 등 영향… 코스피도 7개월 만에 2400선 무너져전문가들 "섣부른 경기부양 지양해야"… 총선 앞둔 정치권 '포퓰리즘' 경계해야
  • 글로벌 경제상황이 한마디로 복잡하다. 정부는 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했지만, 흐름은 녹록잖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경제상황이 우리나라가 딱히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대외의존도가 큰 처지에서 불확실한 대외 변수에 노출되며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시경제 상황을 하나씩 풀어보고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본다.<편집자 註>
  • ▲ 미 연준.ⓒ연합뉴스
    ▲ 미 연준.ⓒ연합뉴스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파죽지세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연 5.0%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본색이 여전한 가운데 미 재무부의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 계획 등으로 말미암아 국채 금리 상승세가 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성 등 글로벌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모양새여서 대외 경제 향방은 말 그대로 안갯속이다.

    19일(현지시각) 미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10년 만기 장기 국채 금리가 이날 오후 5시 직후(미 동부시각 기준) 연 5.001%를 기록했다.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는 '중대 기준점'으로 여겨지는 5% 턱밑인 4.9898%에 마감됐다.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 선을 돌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미 10년 만기 채권은 글로벌 채권 금리 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채 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일(한국시각)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40.80포인트(p, 1.69%) 내린 2375.00으로 집계됐다. 코스피가 2400선을 내준 것은 지난 3월21일 이후 7개월여 만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이 1749억 원어치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4.79p(1.89%) 내린 769.25로 장을 마쳤다.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607억 원, 537억 원어치 매도 우위를 보이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지난 18일 이후 3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 ▲ 미 국채금리 추이.ⓒ연합뉴스
    ▲ 미 국채금리 추이.ⓒ연합뉴스
    이날 미 장기 국채 금리가 가까스로 5%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미 연준의 긴축 장기화와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 충돌의 확전 가능성, 미국의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채 금리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적잖다.

    이날 국채 금리 발작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버튼이 눌러졌다. 파월 의장은 19일(현지시각)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여전히 너무 높으며 최근 몇 달간의 좋은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를 향해 지속 가능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또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하게 2%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일정 기간 추세를 밑도는 성장세와 노동시장 과열 완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나와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장은 파월 발언을 두고 현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0일 2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거듭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연준은 내년 말 기준금리를 5.1%(6월 전망치 4.6%), 2025년 말엔 3.9%(6월 전망치 3.4%)로 각각 제시했다. 이는 연내 한차례 베이비스텝(0.25%p 기준금리 인상)을 더 밟은 뒤 내년에 금리를 0.5%포인트(p)만 내릴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앞선 6월 전망치와 비교했을 때 내년 금리 인하 속도가 더욱 더딜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 셈이다.

    미국의 탄탄한 고용시장도 긴축 장기화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이달 8~14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9만8000건으로 집계됐다. 한 주 전보다 1만3000건 줄었다. 올 1월 21일 주간(19만4000건)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1만 건)에도 못 미쳤다. 이는 미 고용시장 여건이 구직자에게 우호적이며 노동시장 불균형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미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의 9월 소매 판매 증가율도 0.7%로 전문가 예상치(0.2%)를 크게 웃돌면서 장기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는 주된 요인이 됐다.

    다시 커지고 있는 미국 셧다운 우려도 불안 요인이다. 미국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미 하원은 지난 3일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당분간 이런 상태가 계속될 전망이다. 미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이 연방정부 임시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잡음으로 축출된 후 짐 조던 법사위원장이 하원의장 후보로 선출됐지만, 선출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고 있다. 이에 공화당은 의장 선출 투표를 당분간 보류하고 임시의장(패트릭 맥헨리 하원 금융위원장)의 권한을 확대해 하원을 운영하는 편법을 꾀했으나 이마저도 내부 반발로 무산된 상태다. 시장에선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각종 경제지표의 발표가 늦어지면서 연준의 정책 결정에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 재무부가 적자국채 발행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국채 금리를 부채질하는 주요 요인이다. 채권시장에서는 공급이 늘면 채권 금리가 오른다. 미 정부가 올 들어 발행한 국채 규모는 1조80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위해 1000억 달러 규모의 지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할 것으로 알려진 상태여서 국채 발행 규모는 연말쯤 2조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국채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 ▲ 추경.ⓒ연합뉴스
    ▲ 추경.ⓒ연합뉴스
    미 국채 금리의 방향성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최악의 경우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은 채권 수익률을 높이고 이에 따라 채권값은 내리게 된다.

    반면 고유가가 국채 금리를 떨어뜨릴 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럼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은 어떻게 이 복합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까.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없으니 마냥 손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기자가 만나 본 대부분의 국내 경제전문가는 직접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만 큰 줄기는 "물가가 안정화될 때까지 대응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이 어렵다고 섣불리 내수를 진작시키려고 움직였다가는 그동안의 물가안정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이는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정부 보조금 등으로 시장에 많은 돈이 풀렸기 때문이다. 화폐 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 섣불리 경기 부양에 나선다면 고물가를 잡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는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농수산물 소비 활성화 정책이 이런 정책 방향과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하지만 이는 거시경제 흐름상 물줄기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적자국채를 더 발행해서라도 수십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제1 야당으로서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