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韓, 지난 60년간 2차례 S-커브 겪으며 성장… 중화학·제조업 중심""초격차 벌리고 고부가가치 전환… 성장모델을 중기·서비스업으로 확장해야""정부가 기업 투자 환경 조성해야… 美·中 갈등은 내실 다지는 시간 벌어줘"
  • ▲ 미중 갈등.ⓒ연합뉴스
    ▲ 미중 갈등.ⓒ연합뉴스
    한국의 저성장 흐름이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선 제3의 'S-커브'를 발굴해야 한다는 제언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가 다시 정체되는 S-커브 경험을 두 차례 하며 발전해 왔다. 머잖은 미래에 세 번째 S-커브 순간을 맞아들여야만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을 탈출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제3의 S-커브를 찾기 위해선 세계의 치열한 지정학적 갈등도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초격차 산업의 확보,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투자 유도를 통한 성장모델 발굴·확장도 선행 조건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지난 19일 '한국의 다음 S-커브(Korea's Next S-Curve)' 보고서를 통해 이런 전략을 소개했다. 맥킨지는 10년 전인 2013년 당시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로 비유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기가 갈수록 침체하는 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해 위기 관리에 소홀했던 우리 상황을 나타낸 비유였다. 10년이 흐른 뒤 맥킨지는 이제 개구리를 꺼내야 한다고 말한다. 개구리가 더 큰 무대에서 맘껏 뛸 수 있도록 틀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대가 바로 제3의 S-커브다.

    맥킨지는 한국이 지난 60년간 두 차례의 S-커브를 겪으며 성장해 왔다고 설명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첫 번째 S-커브는 지난 1965~1985년 중화학공업 기반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의 시작과 끝을 비교해 우리 주요 수출품목은 10개 중 6개가 바뀌었다. 두 번째 S-커브는 1985~2005년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이 기간의 시작과 끝에도 수출품목은 6개가 교체됐다.

    20년 간격으로 찾아온 두 차례 S-커브를 거쳐 이제 세 번째 S-커브를 맞이할 시점이지만, 우리 경제는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5년과 지난해를 비교해 우리 수출품목의 변화는 디스플레이 1개 품목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매해 큰 폭으로 뛰어올랐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정체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모두 입을 모아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의 낮은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 ▲ 송승헌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연합뉴스
    ▲ 송승헌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연합뉴스
    ◇"지정학적 갈등은 기회"… 美-中 갈등에 시간 벌었다

    우리 경제의 이런 저조한 흐름은 세계의 지정학적 갈등과도 연관이 깊다.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데 이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등 국제 정세는 날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상호 간 무역 보복조치를 연신 주고받는 미국·중국의 패권 경쟁과 주요국들의 통화긴축 기조 등도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맥킨지는 한국의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 중 하나인 미·중 간 갈등이 우리가 이차전지와 반도체 등의 주요 산업에서 중국과 맞서기 위한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동안 우리로선 내실을 다질 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양대국이 알력 다툼에 주력할 때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며 S-커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없었다면 한국 배터리 업계가 지금처럼 투자하고 체력을 단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도 시간을 버는 중"이라면서 "중국과 경쟁하게 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중국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한국이 먼저 시작해 실적을 쌓기엔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달 3일 개천절 경축식에서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체감경제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은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도 "변화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과감한 규제 개혁으로 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술 혁신을 촉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 반도체.ⓒ연합뉴스
    ▲ 반도체.ⓒ연합뉴스
    ◇"첨단전략산업에서 '초격차' 이끌어야"… 中 따돌려야 韓 뜬다

    과거 중공화학업과 첨단 제조업을 거쳐 제3의 S-커브는 '초격차 산업'이 핵심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 등의 국가 첨단전략산업에서 세계 주요국을 상회하는 초격차를 벌리고, 이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견해다. 

    정부는 초격차 확보에 이미 사활을 걸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첨단산업 육성정책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을 통해 앞으로 10년간 첨단산업의 연구·개발(R&D)에 2조30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R&D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통해 초격차 기술력을 뒷받침하겠다는 복안이다. 분야별로 △디스플레이 9500억 원 △반도체 5569억 원 △인재양성 5910억 원 △이차전지 1987억 원 등을 각각 지원한다. 

    특히 이 중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디스플레이는 중국의 굴기에 밀려 빼앗긴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다.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은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세계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으나, 자국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해 생산을 돕는 중국의 '저가형 양산' 전략에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주도권을 내줬다. 다만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기회로 여겨진다. 정부는 OLED 기술의 초격차를 기반으로 굳건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 ▲ 산업생산.ⓒ연합뉴스
    ▲ 산업생산.ⓒ연합뉴스
    ◇"정부는 기업 투자 이끌고, 기업은 성장모델 늘리고"… '효자 제조업'은 옛말

    S-커브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민간 기업의 활발한 투자다. 맥킨지는 기업들이 투자를 통해 계속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내고, 이를 개발하기 위한 중소기업들이 끊임없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기업과 제조업에 치우쳐 있는 우리 성장모델을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등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 수출의 1등공신은 단연코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두 번째 S-커브의 중심으로서 우리 경제를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다만 이는 불균형한 성장모델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송 대표는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자 중에선 대기업만 성장하고, 제조업·서비스업 중에선 제조업만 성장하는 식으로 한쪽에 집중된 성장이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이를 다면적인 모델로 전환해야만 S-커브의 가망이 높아진다는 조언이다.

    성장모델을 늘리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다행인 점은 윤석열 정부가 '킬러규제 혁파'를 천명하며 기업을 위한 여건을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정부는 투자 촉진을 위해 60일 이내 미처리 시 처리한 것으로 간주하는 '인허가 타임아웃제'와 인접 지방자치단체 간 수익을 공유하는 '상생벨트 제도' 등을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투자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앞으로 5년간 민간으로부터 550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맥킨지는 이런 요건들이 모두 맞아떨어져 한국에 세 번째 S-커브가 찾아온다면 우리 경제가 또 한번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는 2040년엔 매출 1000억·100억·10억 달러 이상인 기업이 각각 5개·20개·100개 이상 추가될 것이란 예측이다. 송 대표는 "세 번째 S-커브를 찾아낸다면 한국은 2040년에 1인당 GDP 7만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대 경제 대국에 진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