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천해야"'반도체-스마트폰 신화' 이끈 '도전정신-실행력' 주목"선견지명 그친 것 아닌 자원-투자 통해 '유형의 기술' 창조"
  • ▲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삼성
    ▲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삼성
    오는 25일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작고한지 3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에서 더 나아가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 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로 꼽힌다.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적극 실천하며 국내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올해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영 혁신에 나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로 이 선대회장의 리더십을 되짚어 봤다.  

    "선진국일수록 유능한 기업 경영자가 많다. 경영자는 아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되며 실천으로 옮겨야 하고, 실천은 경영 성과로 나타나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1997년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도전정신'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어도 반드시 이룩해 후세에 넘겨주어야 할 지고의 가치이자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할 당시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명예를 다 바치겠다고 천명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에 불굴의 도전정신과 적극적인 투자 실천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기업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는 지금도 모든 기업 경영자들의 배움의 대상이 될 정도다. 

    국내외 석학들도 삼성의 신경영의 원동력으로 이 선대회장의 도전정신과 실행력을 꼽는다. 한 때 최고라 불리는 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주저하며 리더십을 서서히 잃은 것과 달리 삼성의 과감하고 빠른 전환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배경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 지난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이상가가 아닌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한 전략 이론가였다"며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통합적 사상가였다"고 평가했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은 단순히 선견지명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자원과 투자를 통해 유형의 기술로 만들었다는 것"이라며 "기술과 디자인을 통한 혁신이 삼성의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이런 경영철학이 깊게 자리한 대표적인 사업이 반도체다. 반도체 사업은 아시아의 그저 그런 전자업체란 평가를 받던 삼성전자를 글로벌 업계를 주름잡는 리딩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난 1974년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반도체는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향후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의 미래 필수 산업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주변 경영진들은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냐"며 만류했다. 당시 삼성의 기술력은 미국, 일본 등 해외 선도 반도체 기업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여기에 외부 환경도 녹록치 않았다. 오일쇼크로 가전 수출길이 좁아지면서 삼성전자는 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이 선대회장은 우리나라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만이 삼성이 30년 이상 장수할 수 있는 미래라고 본 것이다. 

    당장의 성과는 따르지 않았다. 일본의 NEC, 히타치, 도시바 등이 미국 인텔에 도전하면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기술 부족도 걸림돌이 됐다. 전자시계용 반도체 정도는 문제 없었지만 조금만 더 복잡해도 생산은 어려운 정도였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이 회장은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웠으며 수없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핵심 인재들을 삼고초려했다. 

    이러한 이 선대회장의 열정은 결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1984년 64K D램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뤘다. 미국·일본보다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삼성의 반도체 기술은 이때 무려 4년 정도로 단축됐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에 승부수를 던진 이 선대회장의 뚝심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삼성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본격적인 육성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1991년 4500억원, 1992년 8000억원을 투자하며 기술 경쟁력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다.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D램 선두로 올라서게 된다. 삼성의 이 같은 전략은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2002년 1위를 석권한 낸드플래시는 D램과 같이 선두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플래시 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반도체 명가로 거듭났다.

    이와 함께 이 선대회장의 도전정신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스마트폰 신화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갤럭시S1이 출시된 지난 2009년만 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 위기감이 팽배했다. 삼성전자는 대항마로 '옴니아' 시리즈를 내놨지만 성능과 편의성은 아이폰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삼성전자는 과감히 옴니아를 단종시키고 '갤럭시S'시리즈를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이폰을 추격하는 여러 스마트폰 제조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성과를 내기까지 최고의 품질을 위한 처절한 내부반성과 자기검증을 진행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직원들은 퇴근을 마다하고 연구실 야전침대에서 숱한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지속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갤럭시S3 출시를 앞두고 스마트폰 케이스 불량이 발생하자 출시 일정을 연기하며 곧바로 불량 스마트폰 케이스를 모두 폐기 처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노력은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는 물론 갤럭시S 시리즈를 '명품' 이미지로 잡리잡게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0년 4분기 전세계 시장 점유율이 처음으로 20%를 돌파한데 이어 갤럭시S2와 S3는 삼성전자를 결국 세계 1위로 만들어줬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1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폴더블폰 등 폼팩터 변화를 이끌며 애플에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타 맥그래스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은 품질, 세계화에 이어 혁신의 유산도 남겼다"며 "기술과 시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역발상이 대단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