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그리스 신용등급 'BB+'→'BBB-' 상향… 피치·무디스도 상향 전망급진좌파→중도우파 정권교체 후 포퓰리즘 지양하며 경제 극적 개선수출부진·세수부족 겪는 韓, 타산지석 삼아야…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 필요"
  •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연합뉴스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연합뉴스
    한때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았던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이 13년 만에 '투자적격'으로 상향되며 경제개혁의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스는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신민당)을 이끄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 힘을 쏟으며 경제부흥을 이끌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수출 부진과 세수펑크 등 복합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리스의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BB 플러스(+)'에서 'BBB 마이너스(-)'로 상향 조정했다. 전망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정크(투기등급) 채권으로 분류됐던 그리스 국채는 투자적격 등급으로 인정받게 됐다.

    S&P는 "그리스는 2009년 부채위기 이후 경제와 재정적 불균형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며 "경제 구조 개혁이 오는 2026년까지 탄탄한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국가부채의 지속적인 감소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P는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올해 말 146%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 조정은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각) 국제신용평가사 DBRS 모닝스타는 그리스의 장기 외화·자국 통화 표시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BB)에서 '투자적격'(BBB)으로 상향했다. DBRS는 피치·S&P·무디스 등 3대 국제 신평사보다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이 회사가 매기는 신용등급을 인정하고 있어 유럽 내 영향력은 높은 편이다. S&P도 지난 5월 그리스 경제에 대한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변경한 바 있다.

    이번에 S&P가 예상대로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함에 따라 다른 신평사들도 잇따라 투자 등급을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피치와 S&P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 직전인 'BB+'까지 올려놓은 상태다. 일각에선 피치와 무디스가 등급 상향에 동참할 경우 그리스 신용등급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 ▲ 유럽4개국 순방중인 한덕수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총리집무실 및 회담장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한·그리스 총리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 유럽4개국 순방중인 한덕수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총리집무실 및 회담장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한·그리스 총리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그리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2010년에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내몰렸고, 결국 재정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ECB 등에 잇달아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유럽의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에 이어 2019년 급진좌파에서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신민주주의당)로 정권이 바뀌면서 경제가 극적으로 개선되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올 6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외국인 투자 유치 활성화 정책으로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IMF 구제금융에서 졸업했고, 경제성장률도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반등했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도 2021년 8.4%, 지난해 5.9%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각각 5.4%, 3.5%를 기록한 EU 평균보다 높았다. 실업률(11%)은 여전히 높지만, 2015년 27.5%에 달했던 실업률은 꾸준히 감소세다. 관광객이 늘면서 건설업계가 살아나고 일자리 창출도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 ▲ 추경안.ⓒ연합뉴스
    ▲ 추경안.ⓒ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수출 부진과 역대급 세수펑크 등으로 복합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도 그리스의 경제부흥 정책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수 부족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당근으로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의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유입보다 유출이 4배쯤 더 많다. 투자가 감소하니까 일자리도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경쟁상대인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17%(단일 세율)로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더 많은 (외국)기업이 (투자하려고) 들어온다. 일종의 박리다매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인세 감세는 투자·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면서 "정부 제안대로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춰야 했는데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은 기업과 외투 유치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 등에 부자 감세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며 나랏빚을 더욱 늘려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해법을 제시한다.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런 '표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대내외적)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일각에서) 침체한 경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대응)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면서 "(섣부른) 경기 부양은 물가 인상을 부채질하고 이는 고금리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랏빚을 더 내서라도 수십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해 시중에 돈을 풀자는 민주당의 접근법은 현 상황에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취임 이후 기존의 포퓰리즘 정책과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펴왔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됐던 무상의료 정책과 소득대체율 90%의 연금 제도를 손질했다. 대신 기업 감세와 공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친시장 정책을 펼치는 데 힘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