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 '수출통제' 소송서 지고 지난달 항소장 제출대한상사 국제 중재 절차 진행 중이지만, 2~3년 소요 예측한수원, 탈원전 폐기후 잇단 해외사업 수주… 유치활동에 리스크 부상
  • ▲ 한국이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 2호기.ⓒ연합뉴스
    ▲ 한국이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 2호기.ⓒ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발전소 생태계 복원 기조에 힘입어 최근 2년간 연달아 1조 원 이상의 해외원전 설비 사업을 수주하며 잭팟을 터뜨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전 기술의 지식재산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난항을 이어가고 있다. 한수원의 독자 원전 수출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던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이달 항소하면서 원전 수주와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6일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에 소송 각하 판결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한수원이 폴란드·체코 등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에 자사 기술을 활용했다며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에 따른 수출통제 대상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서 미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된 특정 원전 기술이 외국에 이전할 경우 에너지부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원자력에너지법을 이행할 권한은 기업이 아닌 미 법무부 장관에게 있으며, 사인(私人)은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자사 기술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개발 초기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현재 수출하는 원전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주장을 폈다.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각) 한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지법은 한수원의 논리대로 수출통제 권한은 미 정부에 있으며, 민간 기업은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소송을 각하했다.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통해 사법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다만 기술 사용의 지식재산권 문제는 다루지 않아 불씨를 남겼다.

    웨스팅하우스는 각하 판결 다음 날인 17일 즉각 성명을 내고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연방법원의 판결은 수출통제 집행 권한이 미국 정부에 있다고 판결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법원에 항소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에서 승리해 자사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겠다"고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로부터 한 달여 뒤인 이달 1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 ▲ 한국수력원자력이 12일 루마니아원자력공사에서 캐나다 캔두 에너지, 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와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사업 공동 수행을 위한 컨소시엄 협약을 체결했다.ⓒ한국수력원자력
    ▲ 한국수력원자력이 12일 루마니아원자력공사에서 캐나다 캔두 에너지, 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와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사업 공동 수행을 위한 컨소시엄 협약을 체결했다.ⓒ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으로서는 지난달 각하 판결로 숨통이 트였던 수출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셈이다. 항소를 차치하고서라도 대한상사의 국제 중재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2~3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제기하자 같은 달 국내 대한상사에 중재를 신청하고, 미 법원에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수원이 여러 해외 원전 수출 사업에 차질 없이 나서려면 중재 결과가 나오기 전 양측 간의 분쟁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견해다. 

    윤 정부 들어 한수원이 해외원전 사업 수주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한수원은 이달 12일 루미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개선 사업과 관련해 캐나다 캔두 에너지·이탈리아 안살도 뉴클리어와의 3자 컨소시엄 협약을 체결했다. 체르나보다 1호기는 인프라 건설까지 포함해 총 사업비가 2조5000억 원에 달하는 사업으로, 한수원 등 우리 기업들이 수주하는 비율은 이 중 40%인 1조 원에 해당한다. 3사는 협약 이후 본격 사업 제안서 준비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쯤 계약을 맺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지난해 8월 3조3000억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폴란드와 한국형 원전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는 6월에 총 사업비 2600억 원 규모의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사업을 수주했다. 이밖에 9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건설 사업, 10조~30조 원에 이르는 폴란드 원전사업 등의 입찰에도 뛰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가 항소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내 신한울 원전의 재가동과 더불어 조 단위 규모의 해외원전 사업을 연달아 유치하며 본격적인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한수원과 K-원전이 법적 분쟁으로 인해 추진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수원의 해외원전 유치가 활발한 만큼 웨스팅하우스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소송보다 더한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수원은 대한상사의 중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출통제 규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 양국의 우호적 관계와 핵 비확산 국제공조 필요성 등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주장한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 적용 여부도 중재판정부의 최종 판단에 따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