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3분기에 연율 4.9% '깜짝 성장'… 고강도 긴축에도 견조한 소비가 견인한국 0.6% 성장에 그쳐… 생산인구 감소·낮은 노동생산성·가계부채 걸림돌전문가들 "개혁 외 대안 없어… 스타트업 진입장벽 없애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키워야"
  • ▲ 안갯속 수출.ⓒ연합뉴스
    ▲ 안갯속 수출.ⓒ연합뉴스
    한국 1.4% vs 미국 4.9%. 글로벌 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산하는 가운데 드러난 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차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양국의 경제규모 등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의 저성장 고착화 이면에는 제때 구조개혁의 고삐를 죄지 못한 정책 미스가 있다고 지적한다.

    26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연율 4.9%로 집계됐다. 2분기(2.1%) 성장률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4.7%)를 웃돌았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을 연간 성장률로 환산해서 GDP 통계를 발표한다. 한국 방식으로 계산하면 3분기에 앞 분기 대비 1.2% 성장했다는 뜻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26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 경제는 탄탄하고 강력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일각에선 강력한 긴축에도 침체를 건너뛰는 연착륙이나 호황을 이어가는 노랜딩(무착륙)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제기된다.

    한국은 어떤가. 26일(한국시각)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3분기 연간 실질 GDP(속보치)'는 2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1.4%다. 4분기 성장률이 0.7% 이상을 기록해야만 달성할 수 있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커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다. 지난 17일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보다 0.4%포인트(p)나 낮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2%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2차 석유파동 영향을 받은 1980년(-1.6%)을 제외하면 없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그에 따른 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배경으로 견조한 노동시장과 초과저축이 꼽힌다. 한국은행은 지난 22일 발간한 해외경제포커스 '미국 소비 호조의 배경과 향후 리스크 점검' 자료에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빠르게 회복된 고용시장에서는 최근까지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초과수요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임금소득이 올 들어 물가 수준보다 빠르게 상승했고, 취약계층의 실질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더 개선되면서 소비 회복세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데믹 기간 소비제약과 정부 이전지출 등에 기인한 초과저축이 민간소비의 재원으로 활용됐다"며 "2021년 하반기 이후 최근까지 1조 달러쯤(가처분소득의 5% 수준)의 초과저축이 소비 지출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하나는 해고와 취업이 자유로운 미국의 고용 환경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해고가 자유롭다. 지금의 탄탄한 고용시장은 코로나19 때 해고가 이뤄졌고, 팬데믹이 풀리면서 그만큼 고용이 많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팬데믹 때 풀린 정부 지원금 등이 초과저축으로 쌓이면서 미국의 가계가 느끼는 고금리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코로나 때 재정 지원금이 많이 풀렸는데 저축이 늘면서 소비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됐다"면서 "기업도 저금리 때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재무조정에 나선 덕분에 단기손익에 영향을 덜 받은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급증한 가계·기업 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4조9000억 원 증가한 1079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은행 기업대출도 지난달 11조3000억 원 늘면서 1238조2000억 원으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금리 장기화는 이자 부담을 가중해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부실 대출 폭탄이 터질 위험성을 키운다.
  • ▲ OECD 회원국별 시간당 노동생산성.ⓒ연합뉴스
    ▲ OECD 회원국별 시간당 노동생산성.ⓒ연합뉴스
    성장률 하락에는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처럼 한국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대외 변수의 영향도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생산성 등 경제의 기초 체력이 바닥을 보이는 데도 2000년대 들어 역대 정부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을 게을리한 결과가 저성장 위기를 가속했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잠재성장률 하락을 꼽을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경제가 물가 불안을 불러오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10년(3.8%) 이후 14년 연속 내림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1년만 해도 5.4%였지만, 올해는 1.9%, 내년엔 1.7%로 곤두박질쳤다. 20여 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50년 뒤 세계를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12위인 한국 경제가 2075년에는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에 뒤지며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거로 예측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데는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통계청이 25일 공표한 '8월 인구동향'을 보면 지난 8월 출생아 수는 1만898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798명(-12.8%) 감소했다. 일각에선 올해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이 0.6명대까지 추락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8월 기준 인구는 2019년 11월 이후 46개월째 자연감소 중이다. 2000년대 이후 출산율 급감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15~64세) 감소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 가능 인구는 2019년 3762만774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림세로 접어들었다.

    설상가상 노동생산성도 OECD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다. 지난해 OECD가 집계한 회원국별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보면 우리나라는 49.4달러였다. 37개국 중 33위에 해당한다. OECD 평균은 64.7달러였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4분의 3 수준이다. 1위는 아일랜드로 155.5달러였다. 우리나라의 3.1배가 넘는다. 독일은 88.0달러, 미국 87.6달러, 핀란드 80.3달러, 일본 53.2달러 등이다. 우리나라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회원국은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등 4개국뿐이다.
  • ▲ 규제 개혁.ⓒ연합뉴스
    ▲ 규제 개혁.ⓒ연합뉴스
    경제전문가들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규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병태 교수는 "(지금) 수출이 부진한데 이는 돌려 말하면 우리 경제가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수출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우리는 수출 비중이 60~70%지만, 미국은 30% 수준"이라며 "서비스업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서비스업이 대부분 정부 관치, 자영업 영역이다. 의료도, 법률·교육서비스도 좋은 일자리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위 규제 개혁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소비를 진작시키려면 소비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가령 골프를 (자유롭게) 못 치게 하니까 외국으로 치러 나간다. 우버 등 스타트업을 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못 하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경우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규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도 적잖다"면서 "하지만 서비스업은 그렇지 않다. 경제가 활력을 찾으려면 기존 기업이 혁신하든지, 활력 있는 새 플레이어가 필요한 데 신기술과 스타트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다. 그러려면 각종 규제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 실장은 "그 과정에서 부실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서 "금융시장에서 이런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과거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이 13년 만에 상향된 배경으로 경제개혁을 꼽는다.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신민당) 집권 이후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 힘을 쏟은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도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반등하며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취임 이후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된 무상의료 정책과 소득대체율 90%의 연금 제도를 손질했다. 대신 기업 감세와 공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친시장 정책을 펼치는 데 힘을 쏟았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