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무허가건물·장마철 침수로 주민들 삶의 질 저하2019년부터 사업 착수…폐가 철거 후 주차장 등 활용치수시설 정비·슬레이트 지붕 교체…돌봄서비스 병행
  • ▲ 전주시 도토리골 전경. 사진=박정환 기자
    ▲ 전주시 도토리골 전경. 사진=박정환 기자
    수도권 쏠림 현상과 저출산·고령화로 '지방 소멸'이 가속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 유출과 인프라 부족으로 지방도시와 농·어촌의 슬럼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는 지역주도 균형발전을 통한 '지방시대'를 주요 정책 기조로 삼고 취약지역 살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핵심은 새뜰마을사업으로 불리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다.

    31일 찾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도토리골은 새뜰마을사업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이 마을은 총 135가구, 22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30년 이상된 노후주택 비율이 53.7%, 취약계층비율이 15.7%에 이르는 대표적인 지방 취약지역으로 꼽힌다. 도토리골이라는 지명은 인근 전주천으로 돛단배가 드나들어 붙여진 '돛대골'이 변형된 것이다.

    도토리골의 가장 큰 문제는 마치 '유령마을'을 연상시키는 폐가와 무허가건물 그리고 빈번한 장마철 침수였다. 또 가옥 대부분이 석면 유해성으로 사용이 금지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고령층만 남은 탓에 마을 전체의 활력도도 떨어졌다.

    그랬던 곳이 새뜰마을사업 시작과 함께 '확' 바뀌었다.

    국토교통부와 전주시 등은 2019년부터 43억원을 들여 △주민 거점공간 조성 △집수리 지원 △치수시설 확충 △주민돌봄서비스 제공 등을 펼치고 있다. 사업 기간은 5년으로 올해 최종 마무리될 예정이다.

    우선 가장 큰 골칫거리인 폐가가 사라졌다. 마을 입구부터 가장 안쪽까지 구석구석을 둘러봤지만 방치된 폐가나 빈집은 보이지 않았다.

    사업 착수 전에는 전 마을 건물의 반 이상이 무허가 시설이었고 3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이 18곳, 연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10여곳에 이르렀다. 특히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폐가가 21곳에 달했다.

    정기택 전주시 취약지구개선팀장은 "폐가 대부분을 없애고 해당 부지에 주차장과 분리수거장, 야외운동장 등 주민 공동 이용시설을 조성했다"며 "특히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주차공간 부족 문제가 해소돼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생활 방범시설인 CCTV 5개와 가로등·보안등 68개도 신설 또는 교체했다"고 부연했다.
  • ▲ 폐가 철거 후 조성한 마을 주차장. 사진=박정환 기자
    ▲ 폐가 철거 후 조성한 마을 주차장. 사진=박정환 기자
    장마철마다 발생했던 침수 문제도 상당 부분 개선됐다.

    이 마을은 인근 제방보다 한참 낮은 저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하천 범람에 따른 침수 피해가 빈번했다. 특히 마을 뒤편 산에서 쓸려내려 오는 빗물과 토사가 골칫거리였다.

    이에 국토부와 시는 여름철 호우로 무너졌던 축대를 보강하고 옹벽과 집수정 등 치수시설을 정비했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한 수로관을 설치하고 계단도 정비했다.

    민관협력형 노후주택 개선사업과 연계한 노후주택 개보수도 이뤄졌다.

    국토부와 시는 노후화된 49가구에 슬레이트 지붕 교체와 도장 등 집수리를 지원했다. 집수리에는 국토부와 협약을 맺은 △한국해비타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KCC △코맥스 △신한벽지 등이 힘을 보탰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인 점을 고려해 언덕이나 골목 계단길 측면에 손잡이용 펜스를 설치한 배려도 돋보였다.

    마을에 30년째 거주 중이라고 밝힌 한 주민은 "동네가 전반적으로 깨끗해졌고 침수 위험이 줄어든 데다 40년 가까이 된 낡은 지붕까지 교체돼 주거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사업에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90% 이상 반영돼 과거보다 훨씬 살만한 동네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사업과 연계된 고령층 돌봄서비스도 호평을 받고 있다.

    국토부와 시는 2020년부터 전문기관과 함께 복지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활동 지원, 지역자원 후원 등을 펼치고 있다.

    복지 프로그램은 매주 캘리그라피와 원예치료, 아로마테라피 등을 실시해 고령층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줄여주고 주민간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는 이불 빨래와 가정방문 청소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정기택 팀장은 "새뜰마을사업이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주민들을 지원한다면 돌봄서비스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살피는 것"이라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에게는 돌봄센터를 통해 필요한 사회복지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 언덕길에 설치된 배수로. 사진=박정환 기자
    ▲ 언덕길에 설치된 배수로. 사진=박정환 기자
    마을 자족기능 강화를 목표로 협동조합 설립도 지원하고 있다.

    도토리골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도토리골사람들'을 2022년 설립하고 본격적인 수익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채리 협동조합도토리골사람들 대표는 "신축 중인 주민 커뮤니티센터를 공동 작업공간으로 활용해 도토리로 만든 쿠키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마을 내 스마트팜 운영으로 버섯을 재배해 주민 소득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획일적인 시설 정비가 아닌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맞춤 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새뜰마을사업의 특징 중 하나다.

    예컨대 도토리골은 침수 방지와 폐가 철거, 또 다른 사업지인 충남 보령시 수청지구는 도시가스 설치 등에 포커싱을 맞추는 식이다.

    김기훈 국토부 도시활력지원과장은 "주거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안전·생활 인프라 개선과 집수리, 일자리·복지 등 휴먼케어를 다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지역민 삶의 질 개선은 물론 장기적으로 지역 균형발전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와 국토부, 농림축산식품부는 2015년부터 올해까지 총 157곳에서 새뜰마을사업을 전개했다. 올해에는 기존 사업장 48곳과 신규 11곳 등 59곳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관련 예산은 327억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