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연내 추진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대기업 사전 규제尹 정부 '자율규제' 철학 달라... '이중규제' 비판도SKT-KT-카카오-엔씨 등 법조계 전진배치 대응
  • 정부가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공룡' 기업을 상대로 본격적인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국내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법조인 출신을 전진배치하며 규제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1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이하 플랫폼공정법)'을 연내안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법안은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해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 대기업들을 대상을 사전 지정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담고 있다.

    공정위는 시장에서 독점력을 행사하는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정하고, 이들을 감시해 독점력 남용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지배적 사업자는 매출액과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한다. 지정 전 사업자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의제기 등 항변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태도다. 이를 통해 지정된 사업자에게는 자사 상품·서비스 우대나 끼워팔기 혹은 멀티호밍 금지(자사 플랫폼 이용자에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행위) 등의 의무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구글과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을 사전 규제하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다.

    공정위는 해당 법안을 통해 시장 내 반칙행위에 빠르게 대응하는 동시에 사전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 획정부터 지배적 지위 판단까지 제재 절차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시장 경쟁을 회복하겠다는 것.

    다만,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사전 지정이 윤석열 정부의 '자율규제' 국정 기조와 상반되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 플랫폼 업체들만 옥죄는 '이중 규제'에다가 국내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해외 법안을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된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은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의 '갑질'을 제재하고, 상생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독과점 등의 문제는 강력히 규제하되,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 업체 간 이른바 플랫폼 갑질에 대해선 자율규제에 맡긴다는 원칙이었다.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국정감사 때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 이행 상황을 점검한 뒤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법적인 규율을 할 계획"이라며 "플랫폼 갑질에 대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거래상 지위 남용 등의 문제는 공정위 법으로 규율이 돼 있고, 계약 관계에서 필수적 기재 사항이나 분쟁 조정 등은 자율규제로 추진 중"이라며 "아직 자율규제 초기단계라서 그 과정을 조금 더 지켜보고 법제화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당시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위 온라인 플랫폼 태스크포스(TF)가 8차례 회의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자율규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며 "자율규제로는 플랫폼 불공정 거래 행위를 중단시킬 수 없다. 기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만큼, 법적 규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공정위는 그동안 독과점 플랫폼의 반칙행위에 공정거래법으로 대응해 왔으나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화 속도에 비해 제재는 늦게 이뤄져 시장 경쟁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쳐왔다는 견해다. 한 위원장은 국무회의 후 가진 브리핑에서 "플랫폼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인해 독과점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쉽게 시정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며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저지하거나 소규모 플랫폼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반칙행위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윤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플랫폼 독과점 구조가 고착되면 소상공인이나 소비자가 선택의 자유를 잃게 된다"며 "기득권을 남용해 경쟁을 제약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디지털경제연합(디경연)은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 도입은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은 "디지털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중복 규제로 한국과 미국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고, 중국 등 외국 사업자들만 유리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SK텔레콤, KT,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주요 ICT 기업들도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법조인 출신을 주축으로 한 인사를 단행하며 대응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SK텔레콤은 대외협력부문 담당 사장으로 부장판사 출신인 정재헌 SK스퀘어 투자지원센터장 겸 SKT 변화추진1 담당을 임명했다. KT는 법무실장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인 이용복 부사장을 영입했다. 카카오는 외부 감시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설립하고, 초대 위원장에 김소영 전 대법관을 임명했다. 엔씨소프트는 변호사 출신인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이 밖에 넷마블은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 ESG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에서는 2010년 넥슨코리아 법무실장·일본법인 이사 등을 역임한 이홍우 이사를 감사로 선임했다. 

    업계 관계자는 "ICT 업계가 법조인 출신을 핵심 요직에 내세우는 배경에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신사업 확장에 따른 정부의 규제 이슈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