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수산물 고를 때 일본산 원산지 고려하는 손님 없어"소비자 "지금 보면 오염수 괴담 누구를 위한 주장이었나 싶다"외국인 관광객 눈에 띄게 늘어… "후쿠시마 이슈 알지만, 개의치않아"식당가, 얇아진 지갑·급등한 물가에 한숨… 킹크랩·오징어 가격 올라
  •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실내 모습. ⓒ임준환 기자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실내 모습. ⓒ임준환 기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기억에서 잊은 지 오래됐어요. 얇은 지갑과 물가가 걱정이에요." 지난 23일 정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이 수산물 소비와 관련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난해 8월 24일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24일로 도쿄전력이 오염처리수를 방류한 지 6개월이 됐다.

    오염처리수 방류 반년을 맞아 찾은 수산시장은 다소 한산했지만, 평온했다. 6개월 전 오염처리수 방류를 앞두고 야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괴담 수준의 가짜뉴스가 유포되면서 소위 '오염수 공포'를 확산시켰지만, 전날 찾은 노량진 시장은 그런 우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한 상인은 "이제 후쿠시마 문제는 사람들 기억에서 잊은 지 오래됐다"며 "손님들도 수산물을 고를 때 (일본산인지) 원산지를 많이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지난해) 처음 오염처리수를 방류하고 나서는 수산물을 팔면서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면서 "이제는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아서 예전과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소비자 역시 오염처리수에 대해 비슷한 생각이다. 갈치를 사려고 시장에 왔다는 김 모(46·여) 씨는 "처음에는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를 방류한 이후 수산물을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매도했다"면서 "이제 와서 보면 누구를 위한 주장이었나 싶다. 상인들은 수산물을 팔지 못했고, 소비자들은 수산물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손자 손을 잡고 시장을 찾은 홍 모(61·여) 씨는 "온 국민이 후쿠시마 이슈를 잊은 지 오래된 거 같다"며 "이제는 '안전하다'고 외치는 캠페인이 오히려 해당 이슈를 상기시킨다.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그런 홍보는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말했다.
  •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한 프랑스 관광객이 킹크랩을 고르고 있다. ⓒ임준환 기자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한 프랑스 관광객이 킹크랩을 고르고 있다. ⓒ임준환 기자
    외국인 관광객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들 역시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킹크랩을 구매한 프랑스 국적의 한 관광객은 "일본에서는 방류량이라도 밝히고 있지만, 중국 등 나른 나라에서는 발표조차 없이 방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일본이 오염처리수를 내보내는 것에 대해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국 국적의 한 관광객은 "일본에서 후쿠시마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일본에서 크게 멀리 있지 않은 태국에서도 해산물을 자주 먹고 있다. 한국 친구들도 해산물을 먹어서 신경 쓰고 있지 않다"고 했다.

    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에 몇몇 상인은 아르바이트생으로 아예 외국인을 고용하기도 했다. 한 상인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뽑으니 통역도 되고 일도 열심히 한다"면서 "한국어에도 능통해서 한국인을 뽑는 것보다 오히려 나을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노량진 수산시장이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한 방송에 나왔다"며 "한국 관광 코스에 노량진 수산시장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 ▲ 23일 오후 12시30분경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손님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준환 기자
    ▲ 23일 오후 12시30분경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손님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준환 기자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이른바 후쿠시마 공포는 떠나갔지만, 수산물 소비 판매량은 최근 줄어드는 추세라며 아쉬워했다. 새벽 4시부터 시장에 나온다는 한 상인은 하루일과 대부분이 휴대전화 게임이라고 전했다.

    그는 "꼭두새벽에 나와 일해도 손님이 많지 않아 신 나진 않는다"며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공포보다 무서운 게 요즘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과 높게 치솟은 물가"라고 꼬집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밝힌 올해 2월 3주차(12~17일) 수산물 가격 상승률(1㎏ 기준) 동향을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양식 참돔(-10%) ▲고등어(-50%) ▲전복(-10%) 등은 내렸지만, ▲자연산 광어(30%) ▲양식 광어(10%) ▲자연산 참돔(10%) ▲오징어(110%) ▲킹크랩(100%) ▲대게(40%) 등 대체로 상승했다.

    갈치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조 모(67·남) 씨는 "이번 설까지는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다양한 할인정책을 펴면서 손님이 어느 정도 붐볐다"면서 "설 이후로는 손님들이 할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잘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전까지는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사다가 이제는 혜택을 못 받으니 발길이 줄어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일시적인 지원도 도움이 되지만,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판매량이 유지된다. 계속해서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 23일 오후 12시30분경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준환 기자
    ▲ 23일 오후 12시30분경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임준환 기자
    시장 2층에 있는 횟집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은 2~3팀에 그쳤고 손님이 전혀 없는 식당도 눈에 띄었다.

    횟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때론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다. 인건비는 오르는 데 사람 발걸음이 줄어드니 어렵다"며 "인건비에 물가까지 오르니 음식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니 손님들은 더 안 오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행히 저녁 시간 때는 손님이 늘어 10팀 가까이 오기도 한다"면서도 "반나절 장사로는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식당을 찾은 홍 모(61·여) 씨는 "손자가 킹크랩을 먹고 싶어 해서 사러 왔는데 가격이 최소 20만 원대에 형성되고 있다"면서 "지갑 사정도 어려운데 가격까지 오르니 구매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시장 2층 식당가에는 오후 6시30분이 넘어서야 활기를 찾는 듯했다.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이블 절반쯤을 넘기는 정도였다.
  •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한 손님이 갈치를 고르고 있다. ⓒ임준환 기자
    ▲ 23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한 손님이 갈치를 고르고 있다. ⓒ임준환 기자
    최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산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수산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잖다. 시장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내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4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민간소비를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p) 감소한 1.7%로 하향 조정했다.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