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칩스법 보조금 발표 눈앞인텔·마이크론 100억달러 몰빵삼성-SK하이닉스 빈손 우려韓정부 '협조' 요청이 전부… 기업들만 애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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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총성없는 ‘기술 패권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가 불러온 반도체 경쟁은 미국에 이어 동맹국가들의 참전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전쟁터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굳건히 지켜진 자유무역 기조마저 위협받으며 반도체판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거센 파고에 직면해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숱한 고행을 거친 '베테랑'이지만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하다. 더이상 기업 대 기업의 경쟁이 아닌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된데다 AI(인공지능) 도래로 새로운 격변기를 맞이하며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이에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현주소를 짚어봤다.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시선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 보조금 집행이 이달 중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고되면서다. 

    칩스법은 미국이 자국내 반도체 투자 촉진을 위해 마련했다. 칩스법을 통한 반도체 투자 규모는 527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한다. 

    반도체 공장 생산 보조금이 390억 달러(약 52조 원), 연구개발(R&D) 지원금이 132억 달러(약 18조 원)다.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 중 280억 달러는 첨단 생산시설에 지급된다. 미 행정부는 750억 달러의 대출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투자를 결정하며 발빠르게 대처한 상황이다. 칩스법을 제외하더라도 대형 고객사가 위치한 만큼 주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변덕에 난처한 상황에 처할 위기다. 돌연 보조금 축소 및 자국 기업에 우선 지급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 100여 곳에 불과했던 칩스법 지원 기업수가 최근 600기업까지 늘어난데다 예산은 한정돼 있다는 게 주요 이유다. 

    여기에 인텔, 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지급할 가능성도 높아 외국 기업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 기업들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제2의 반도체지원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결과에 따라 지원이 계속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미국 대선 구도는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로 좁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 시 칩스법을 유지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국 기업에는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반도체를 다시 일으켜 보겠다는 전략에서다. 미국 기업들 역시 이를 계기로 글로벌 시장 판도를 바꿀 기회로 삼고 있다.

    미국은 최근 자국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인텔은 대출 지원까지 합쳐 최대 100억 달러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부도 이를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 

    인텔은 미국의 반도체 부흥을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알린지 불과 3년 만에 2나노미터(㎚·1㎚=10억분의 1m)와 1.8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도입하고, 2027년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TSMC와 삼성전자 양산 예정일보다 앞선 계획이다.

    인텔이 자신감을 내비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우군 확보다. 보조금 지원에 더해 고객사로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확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물량은 인텔의 역대 최대 수주액인 5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 같은 분위기에 국내 기업들을 바라보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속도전이 생명인 반도체 산업에서 뒤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 텍사스 테일러에 173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보조금 지급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테일러 공장은 고성능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분야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으로 삼성전자의 대만 파운드리 1위 TSMC 추격을 위해 핵심 생산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곳이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이 미뤄지면서 당초 2024년 말로 계획했던 테일러 공장의 가동 시점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SK하이닉스도 최근 미국 인디애나 주 등에 패키징 공장을 신설하기 위해 부지 검토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 15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반도체 공장 부지 선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 기업과 함께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 홀로 분투' 중인 기업 입장에서도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산업부는 이달까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 지원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원 방안에는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같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내 기반시설 구축비에 대한 국비 지원을 확대하고, 추가 인센티브 등을 도입하는 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력 양성 등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