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300조 증발HBM 공급 과잉론 고개엔비디아 밸류체인 연쇄 파장 불가피파운드리 부진 지속… TSMC 하향 조정
  • ▲ 미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로고.ⓒ로이터/연합뉴스
    ▲ 미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로고.ⓒ로이터/연합뉴스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중동 전쟁 확전 등 지정학적 위기감에 더해 미국 기준금리 인하 지연 등 대외 리스크 확대로 이제 막 회복하려는 반도체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랠리를 주도해 온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난 19일(현지시간) 10% 급락하면서 시가총액 2조 달러가 붕괴됐다.

    엔비디아의 급락에는 특별한 악재는 없었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 수요 회복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전쟁 영향에 더해 경제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수요 회복 속도는 더딘 상태다. 그러나 AI 반도체 공급은 늘어나면서 공급과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때문에 하반기 HBM 시장에서 가격 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HBM 공급은 SK하이닉스가 독점해 왔지만 최근 미국 마이크론과 삼성전자도 가세하면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전자도 HBM3E 샘플에 대한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올해 초 미국의 증권사 JP모건도 이 같은 점을 관측하기도 했다. JP모건은 지난 2월 보고서를 통해 엔비디아의 실적 호조는 반도체 공급 부족 해소를 의미한다며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점차 부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JP모건은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는 지난해부터 꾸준한 공급 부족을 겪으면서 고객사들이 이를 주문한 뒤 받기까지 수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엔비디아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을수록 하반기 들어 재고 조정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반도체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 부진에서도 반도체 회복세를 이끌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도 지난 1분기 AI 반도체 효과로 뚜렷한 실적 회복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AI 반도체까지 다시 침체에 빠질 경우 업황 회복도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상승세를 보이던 D램 가격은 숨고르기에 진입한 상태다. D램익스체인지에 의하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올해 3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월 가격(1.80 달러)을 유지했다. 4개월 연속 상승 흐름을 보이다 멈춘 상황이다. 

    파운드리 시장은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공급과잉 우려로 반도체 업계의 투자 심리까지 위축된 상태다. 

    TSMC는 지난 18일 실적발표에서 파운드리 산업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당초 20%에서 10%대 중후반으로 하향 조정했다. 메모리를 제외한 전체 반도체 성장률도 10%로 고쳐 잡았다.

    반도체 장비 분야도 심상치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탑 5'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들의 총 매출이 전년 대비 1% 감소한 935억 달러에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세, 거시경제 둔화, 재고 조정, 스마트폰 및 PC의 수요 감소 등이 주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4분기보다 27% 감소한 52억9000만유로(약 7조8000억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1분기 주문 예약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 ASML은 7나노 이하 미세공장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급하는 유일한 회사다. 

    ASML의 실적 감소는 그만큼 반도체 시장이 위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공급과잉을 우려한 파운드리 업계가 장비 구매를 취소하거나 미루는 등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반도체 업황 회복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