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계, 입찰과정 국산화 비율 낮추자 中 침투 가속화철강·석유화학, 공급과잉에 수익성↓… 중기, 매출 둔화“소비자 선택지 넓히지만 도산 우려… 차별화 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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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알테쉬(알리·테무·쉬인) 등 이커머스 업체들을 필두로 하는 중국 저가 업체들의 공습에 국내 산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은 부동산 위기, 경기 침체 등으로 내수 소비가 약해지면서 해외수출로 재고 소화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 한국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저가 밀어내기가 지속되며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저가 제품 밀어내기가 이어지며 공급과잉과 이로 인한 가격 하락 등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선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국계 업체들의 풍력 시장 진출이 이어지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국내 업체와의 합작법인을 세우고 한국에서 발주하는 민간 해상풍력 발전 사업에 꾸준히 견적서를 내는 등 국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단지 건설 비용의 5~10%를 차지한다. 바다 위에서 생산한 전력을 육지로 끌어오거나, 발전소 내부에서 전력을 이동시키는 필수 설비다.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라 공공사업엔 외국 업체가 해저케이블을 공급할 수 없지만, 민간에서 발주하는 사업엔 중국 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 

    미국·유럽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기술력 부족, 선진국 전력망 사업 경험 부족 등으로 진입장벽에 부딪힌 중국 전선업체들이 한국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경험과 기술력을 쌓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업체들은 저가 가격을 무기로 이제 시장 성장기에 접어든 국내 시장에 잠입하고 있어 국산 생태계 붕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해저·통신망 사업은 시공부터 운영까지 전 단계에서 민감한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정보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내 산업계는 입찰 과정에 지난해부터 국산화 비율(LCR)에 따른 가중치가 빠지고,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중국 기업의 침투가 가속화됐다고 본다. 낮은 가격에 기자재를 공급하는 중국 제품을 제안한 사업자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가격 중심의 입찰 방식을 유지하고 중국 제품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중국 기업의 침투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내 시공업체의 경쟁력을 줄이고, 결국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산 기자재에 이어 시공선박까지 국내에 진입하며 국부 유출이 가시화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해양엔지니어링 전문 중소기업 한국해상기술(코세코)은 중국 1위 해저케이블 전문기업 ZTT와 해상풍력터빈 설치 전용선박(WTIV) 5척의 한국 내 독점 사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일단 계약은 해상풍력터빈 시공으로 제한됐지만 해저케이블 시공까지 중국 업체가 진출하게 되면 산업에서 창출된 이익을 중국이 독식하는 결과가 우려된다. 특히 해상풍력 산업은 국가 보조금까지 투입되는 만큼 국부 유출이 발생했을 때 타격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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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발 공습에 휘청이는 곳은 해상풍력 뿐만이 아니다. 철강, 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저가 제품 점령이 이어지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중국산 저가 철강재 수입이 늘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 1~2월 중국의 철강재 수출 물량은 1591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6% 늘어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철강에 대규모 설비를 증설했는데, 코로나 이후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공급과잉에 빠진 상태다. 중국 정부 주도로 감산을 강제해왔지만 수요 부족으로 자국 내 넘치는 물량을 저가로 해외로 돌리고 있다. 이는 부진한 국내 철강 업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중국 업체들의 대규모 설비 신·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장기부진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범용 제품은 스페셜티(고부가가치)와 달리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석유화학 최대 소비국이자 우리 수출의 40% 안팎을 차지한 중국이 더 이상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액이 전년 대비 15% 감소할 정도로 타격은 컸다. 

    결국 석유화학업계는 인력 전환 배치와 희망퇴직 등 구조 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분간 시황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해 인건비 감축이란 특단의 조처를 내린 것. 동시에 수익성 낮은 범용 사업 비중을 줄이기 위한 매각작업에도 돌입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은 생존위기를 느끼고 있다. 중국이 내수 침체로 저가 전자제품, 의류, 잡화 등 재고를 헐값에 밀어내면서 국내 이커머스뿐 아니라 해당 물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까지 시름에 빠졌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20개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직구 증가가 기업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응답이 80.7%에 달했다. 응답한 제조업체 10개 사 중 3개사는 이미 매출 감소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중기중앙회는 최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에 중소기업계 우려와 건의 사항을 전달한 상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차이나 커머스 등의 등장으로 국내엔 ‘초저가 시장’이 새롭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옵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수입 유통업자는 모두 도산하고 국내에서 지킬 것을 다 지키며 공장을 운영하는 중소 제조업자도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이나 커머스와 공존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들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