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장관·이창용 총재, 환율 상승에 애꿋은 서학개미 탓만"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형국"… 문제의 근본원인은 모르쇠에르도안 폭주에 '소신' 지킨 터키 중앙銀 총재, 5년새 5번 바뀌어서학개미 탓은 신뢰만 떨어뜨려 … 직 걸고 근본원인 직시해야
  • ▲ 이재명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연합
    ▲ 이재명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연합
    진나라 2세 황제 시절, 간신 조고(趙高)는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馬)'이라 우겼다. 권력을 확인하고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일종의 사상 검증이었다. 서슬 퍼런 권세 앞에 사슴을 사슴이라 직언한 신하들은 숙청당해 목숨을 잃었고, 거짓에 동조해 말이라 아첨한 이들만 살아남았다. 거짓이 진실을 집어삼킨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는 권력이 상식을 유린할 때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경고다.

    2000년이 지난 2025년 대한민국 금융시장에서도 이 섬뜩한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경제가 흔들리는 명백한 위기 상황 앞에서, 책임져야 할 관료들은 엉뚱한 곳에 손가락질을 하며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정책 실패라는 '사슴'을 감추기 위해 애꿎은 국민을 탓하며 '말'이라 우기는 꼴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구윤철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환율 급등의 책임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개미'들에게 돌렸다. 이 총재는 "청년들이 해외 투자를 유행처럼, 쿨하다고 생각해서 한다"며 환율 상승의 원인을 개인의 투자 성향 탓으로 치부했다. 구 장관은 한 술 더 떠 "해외주식 양도세 인상 검토"라는 겁박성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원화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될까 두려워 각자도생에 나선 국민들을 향해 "너희가 쿨한 척하느라 나라가 힘들다"고 비아냥거린 셈이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기는 조고의 행태보다 더한,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 총재와 구 장관과 반대로 터키 중앙은행 총재들은 '소신'을 지키고 옷을 벗었다. 2024년 2월 파티흐 카라한 총재가 임명되기까지, 5년 사이 무려 5명의 총재가 교체됐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자율은 모든 악의 부모(mother and father of all evil)"라며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때 홀로 금리 인하를 강요했다. 이에 반기를 든 총재들은 가차 없이 잘려나갔다. 2019년 무라트 체틴카야 총재가 금리 인하를 거부하다 해임된 것이 신호탄이었다.

    특히 2021년 해임된 나지 아발(Naci Agbal) 총재의 사례는 한국 관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19%로 대폭 인상하는 결단을 내렸다. 시장은 환호했으나, 에르도안은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여 이틀 만에 그를 전격 경질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고 물가는 80% 넘게 치솟았다. 결국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튀르키예는 지난해에 기준금리를 50%라는 살인적인 수준으로 인상하는 등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 총재들은 쫓겨났을지언정 전문가로서의 양심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려다 '명예로운 해고'를 당한 셈이다. 반면 대한민국 금융을 이끌어온 엘리트 관료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터키의 관료들은 권력의 폭주를 막으려다 목이 날아갔지만, 한국의 관료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비겁한 침묵, 아니 적극적인 '거수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지금 환율이 미친 듯이 오르는 진짜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대표적으로 이창용 총재의 오판이 부른 나비효과다. 그는 지난 2022년 "장기로 볼 때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안 된다는 경제학적 논리는 없다"며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 결과 역대 최장기간, 최대 폭의 한미 금리 역전이 방치됐고 외국인 자본 이탈의 빌미를 제공했다.

    심지어 2022년 환율이 1300원대일 당시에는 "해외 투자는 상투를 잡는 것"이라며 사실상 해외 투자를 만류했다. 그때 그의 말을 믿고 원화를 들고 있었던 국민들은 지금 '벼락 거지'가 됐다. 반면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달러 자산에 투자한 '서학개미'들만 살아남았다. 예측은 틀렸고, 정책은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가 주도하는 무차별적인 현금 살포, 즉 '쿠폰플레이션(Coupon+Inflation)'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4년간 한국의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약 20%에 달해, 같은 기간 3%대에 그친 미국보다 7배나 빠르게 돈을 풀어댔다.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하듯 찍어내는 지역화폐와 각종 지원금은 시중 유동성을 폭발시켰고, 돈이 흔해지니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 건 경제학의 기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국민을 상대로 '지록위마'를 더욱 노골적으로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달 24일 IMF 연례협의 보고서 관련 보도자료를 내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과 외환시장 구조개선 등 최근의 재도개선 조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완화와 국내 장기투자 기반 확충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IMF 보고서 원문(IMF Country Report No. 25/308)의 내용은 달랐다. 원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기 위한 개혁이 장기 투자 유치에 필수적(Reforms to reduce the "Korea discount" ... are critical to attract long-term investment)"이라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인데, 기재부는 이를 마치 IMF가 현 정부의 정책 성과를 칭찬한 것처럼 교묘하게 짜깁기했다.
  • ▲ 기재부의 보도자료(위)와 IMF 보고서 원문ⓒ기재부, IMF
    ▲ 기재부의 보도자료(위)와 IMF 보고서 원문ⓒ기재부, IMF
    IMF는 오히려 한국 경제를 "불확실성이 높고 하방 리스크가 지배적"이라고 평가하며 구조적 위기를 경고했다. 쓴소리는 쏙 빼고, 하지도 않은 칭찬을 가공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대국민 사기극'이다.

    환율은 한 나라 경제의 성적표다. 성적표가 엉망으로 나왔는데 "시험지가 잘못됐다"거나 "옆자리 친구(서학개미) 때문이다"라고 핑계를 대는 꼴이다. 

    이창용 총재와 구윤철 장관에게 묻는다. 에르도안에 맞섰던 튀르키예 총재들처럼 직을 걸고 소신을 지킬 용기는 없는가. 없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