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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
노무현 정부의 언론 정책은 사실상 파산 상태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은 권력을 갖고 있으니 최근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거창한 이름 아래 발표한 기자실 통·폐합 같은 조치를 밀어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한부 생명에 불과해 보인다.
첫째, 우군(友軍)이 없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마저 “동의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일부 친노(親盧) 세력을 빼곤 모두가 고개를 돌린 상태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했던 2005년 여름과, 올해 초 개헌을 제안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연정과 개헌을 성사시키려 했지만, 대세에 밀려 뜻을 접어야 했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로 대미(大尾)를 장식하려 하는 이 정권의 언론 정책은 앞선 두 번의 경우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대연정·개헌은 그 필요성이라도 강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나마 둘러댈 명분조차 없다.
둘째, 이 정권이 왜 이토록 언론 문제에 집착하는지가 최근 많은 이들의 증언에 의해 확연히 드러났다. 모두가 정권의 속내에 담긴 동기와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의 ‘입’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 앞장섰다. 2002년 대선과 2003년 초 정권 인수위의 대변인을 했던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유종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늘 자신이 ‘언론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비판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못한다”며, “언론에 대한 보복 폭행”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1988년 TV 청문회 스타로 각광받았을 때부터 2002년 대선까지 노 대통령은 지금의 어떤 정치인보다 ‘언론의 혜택’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권 친위(親衛)조직임을 자임하고 나선 ‘참여정부평가포럼’은, 현 정부의 성과가 잘못된 언론의 여론 독점 때문에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게 ‘언론 탓’이란 엉뚱한 ‘피해 망상’에 정권에 참여한 사람 전원이 감염돼 있는 것이다.
셋째, 이번 소동은 오래가기 어렵다. 이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등 제(諸) 정파와 여야의 모든 대선주자들이 이 정권의 잘못된 언론 정책을 고치겠다고 하고 있다. 설령 기자실 통·폐합이 예정대로 8월에 시행된다고 해도, 그 운명은 길어야 6개월이다.
넷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언론은 무(無)오류도 아니고 결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매일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직업적 속성상,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기자 생활을 시작한 필자의 눈으로 볼 때 우리 언론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전진해 왔고, 스스로의 자정 기능을 발전시켜 왔다고 믿는다. 그 결과 우리 언론도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언론 자유’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 이런 우리 공동체의 기본 축은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 말에 함부로 흔들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쯤 되면 노 대통령이 스스로 거둬들이는 게 순리이고, 상식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선뜻 그러지 않을 것임을 모두 잘 알고 있다. 5년 가까이 노 대통령이 얼마나 자기만의 대의와 원칙에 사로잡혀 있으며, 역발상(逆發想)에 집착하는지를 충분히 경험하고 목격한 데서 나온 학습효과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노 대통령과 이 정권에 걸었던 마지막 기대마저 거둬들이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 ‘언론과의 전쟁’이 국정의 제1 목표가 된 이 정부가 자초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