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안들은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성공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집단적으로는 파괴적인 실패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코리안들을 집단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독재를 하든가, 신명을 나게 하든가, 하는 것입니다. 신명나는 에너지를 결집시키면 이순신 기적도 만들어 내고, 한강의 경제 기적도 만들어 냅니다. 애국심이나 신명을 고취시키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죽기 살기로 적과 싸우고, 붉은 악마의 전설적 응원 열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한국인들은 박정희 독재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투쟁적 신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2009년의 한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선진 부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민주주의를 성숙시켜야 합니다. 북한이라는 별종적인 국가와 화해 통일을 추구하면서 세계적인 경제 풍랑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동시에 세계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제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위태 위태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강의 경제 기적이 날개를 달고 세계로 비상할 것 같으면서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조바심을 주게 하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화려한 꽃을 피울 것 같으면서도 민주주의 장미가 언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갈지도 모를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주고 있습니다. 상반된 기대와 불안으로 헷갈리게 하는 근원은 나라의 성격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성격이 한 인간의 장래를 결정하는 숙명적 요소가 되듯이, 국가의 성격, 나라의 문화가 민족의 길을 이끌어가는 요체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국격, 나라의 문화가 균열되고 일그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 문화가 한국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치 기능을 무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심성이 탁해지고 정치가 고장이 나면 한국이 오늘 이룩한 성취는 하루아침에 모래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구심점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나라의 구심점은 대통령이고, 거기에 사상계 종교계 학계 언론계의 원로와 지도자들이 구심력을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런 구심점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누구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아무도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 극좌 극우, 독불장군들이 독버섯처럼 습지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념적 분단과 지역적 지방색이 젖은 땅을 더욱 음습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대통령을 무슨 노리개 감으로 생각하니 초등학교 아이들이 대통령을 쌍욕으로 막말을 하는 풍토가 됐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상상이 안 되는 막가는 풍토입니다. 이걸 평등이라고 생각하고 권위주의가 청산되었다고 궤변을 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병에 걸렸습니다.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고 원로의 경험과 경륜에 경청하고 머리를 숙일 수 있어야 한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도덕성과 리더십을 탐탁지 않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큰 지지로 대통령을 선출한 뒤 그에게 기대를 걸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자 말자 지지도가 급락하고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 한 것입니다. 정부를 구성할 때 각료가 "강부자 고소영" 이라고 불붙기 시작한 불만이 독선 독재적이고 파쇼적이라는 수준까지 비등하고, 광우병 탄핵 운동으로 까지 번졌습니다. "경제 대통령"을 기대하고 뽑았는데 경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실망과, 언론을 수구 독점자본에게 주기위해 미디어법을 개정한다는 몰매를 맞으면서, 시장에서 음식을 사먹고 대화한 후 정치적 쇼라는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치는 만화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망치로 문을 부수고 집단 몸싸움을 하는 창피스런 장면만이 아니라, 대통령이 시장에서 음식 사먹는 것 까지 시비를 걸고, 공권력을 제대로 집행 못하는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몰아 부치는 한국 정치는 코미디입니다. 어느 신문 논설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연산군 보다 더한 "MB 사화"를 일으켰다고 준열하게 질타하고, 한국 정치에 파시즘을 키우고 있다고 엄숙한 선언을 했습니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이념적 컬트 광신도들이 박수와 환호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렇게 미워하고 매도하면 정치가 제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나 극우세력은 가슴을 치면서 속을 끓이고 있습니다. 러시 림바우나 시안 헤네시 같은 극우 토크 쇼 진행자들이 수천만 청취자들과 오바마를 도마 위에 놓고 난도질을 하지만 미국 정치는 파도나 격랑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오바마가 밀어 붙이는 의료 개혁안은 보수 진영 시각으로 보면 사회주의적이라고 할 만큼 획기적 혁신적이고, 타운 홀 동네 토론장에서는 격한 시민들의 찬반이 불꽃을 튀기고 있습니다. 의료 개혁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열도는 한국의 미디어법이나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절실 절박하고 격렬합니다. 오바마 정부가 당면한 최대 난제이자 국가적 이슈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대결을 하면서도 논쟁의 방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찬반이 격렬하면서도 제도의 틀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매도하지 않고, 비판을 해도 논리적으로 합니다. 이것이 미국식 민주주의고 선진정치입니다. 툭하면 농성하는 국회의원들과 사사건건 머리 띠 두르고 거리에서 악을 쓰는 이기적인 시민들로는 민주적 토론을 할 수가 없고, 국가를 위한 법안을 창출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서는 법안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의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습니다. 반대 세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지연)입니다. 그것도 상원 100석 가운데 의석수가 41석이 되지 못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면 그가 임기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을성과 관용과 배려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미국의 실업률은 한국보다 몇 배가 높은 10%로 육박하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3%가 뛰었습니다. 오바마에게 루즈벨트식 대전환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과 불안에 조바심하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아우성을 치면서 촛불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업가적 정치인이라 그런지 확고한 철학이 부족하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려는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결함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헌납해서 도덕성의 흠도 보완을 하고, 못살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시키고, 자신의 약점을 고치려 하고, 비판을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너무 조급하고 반대자들이 너무 격합니다. 대통령을 뽑았으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모아 줘야지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기를 계속하면 나라를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강부자 고소영"이 이명박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실태를 반영하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인 사회의식과 국민 도덕이 부패하고 물질주의로 가는 마당에 이명박 사람들만 청렴한 군자가 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의식과 문화가 오염된 물과 공기를 함께 마시고 사는 한국 땅에서 오염되지 않는 청정한 공복과 지도자는 가물에 콩 나듯 하고 있습니다. "강부자 고소영" 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욕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거기에 끼지 못해서 그렇지 그 심성이나 도덕성은 오십보백보입니다. 국민과 나라의 심성과 인성을 쇄신해서 "강부자 고소영" 풍토를 고쳐가고, 이명박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 같은 부패한 풍토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사람을 찾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양심적이고 건전한 진보와 보수 세력이 각자의 브레인 탱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정책을 개발하고 반영시키고 준비해야 합니다. 보수적 레이건이나 진보적 클린턴이 경제를 알아서 미국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닙니다. 철학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실행시킬 수 있는 인재를 잘 쓰고 국민을 설득하고 협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설복시키는 리더십을 가져야겠지만 국민들은 설득당할 수 있는 열린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이 선진 강국으로 가는 길은 국민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결집시키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묶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감동의 정치가 조화되어야 합니다. 군사문화를 청산한 한국인들이 독재주의를 원치 않는다면 신명나는 정치, 감동의 정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감동의 정치는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겠지만, 국민들이 감동될 수 있는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도 국민들이 독불장군으로 가슴을 닫으면 감동의 정치는 춤을 출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를 조롱하고 폄하하고 끌어내리는 가학적인 땅에서는 생산적인 정치가 자랄 수 없습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들을 줄 알고, 경쟁자를 존중할 줄 알고, 지도자를 격려할 줄 알아야 희망의 정치가 자랄 수 있습니다. 격려나 칭찬은 아부나 아첨과 다릅니다. 대통령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밀어줘야 대한민국이 세계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