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의 PC사업부 분사는 모바일 시대 도래 웅변IT 대기업들, 생존 차원서 사업정리·M&A 시도
  • 18일(현지시간) 휴렛패커드(HP)가 태블릿PC의 성장 압력에 못 이겨 PC사업부의 분사를 전격 발표한 것은 PC시대가 저물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생존을 건 패권 다툼이 벌어지는 모바일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지각변동이 진행되면서 IT대기업들이 업계 재편에 맞춰 생존을 위해 인수·합병(M&A)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구글이 최근 경영부진에 허덕이는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HP는 이날 모바일 사업을 접고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오토노미(Autonomy)를 인수키로 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IT업계 상징적 사건.."PC, 태블릿에 밀리다"

    세계 최대 PC메이커인 휴렛패커드가 PC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은 애플의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PC의 융성과 그에 따른 PC산업의 퇴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서플라이는 지난 12일 태블릿PC를 필두로 TV와 비디오게임콘솔 등 이른바 PC를 제외한 인터넷 접속 가능 기기들(internet-enabled devices)이 2013년 5억360만대가 생산돼 4억3천370만대로 예상되는 PC 생산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PC가 3억4천530만대가 생산된 반면 인터넷 접속 기기들은 1억6천100만대에 그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PC가 급격하게 퇴조할 것으로 전망됐던 것.

    특히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태블릿PC가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PC시장을 잠식해왔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세계 PC시장이 태블릿PC로 인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올 하반기 PC성장률을 기존 6.7%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개브리엘컨설팅그룹의 애널리스트 댄 올즈는 "(PC사업이) 이미 저성장, 저이윤 사업이 된데다 향후 변화될 가능성도 없다"며 "따라서 HP가 이 분야에서 손을 떼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매각 대신 분사를 택한 것은 HP의 PC사업부를 살 의사와 그만큼의 자금을 가진 후보군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존경쟁 치열 모바일 업계에 패자 속출..M&A시장 활짝

    이와 함께 HP가 지난해 휴대전화업체인 팜을 무려 12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후 야심 차게 시작했던 모바일사업을 접은 것은 대대적인 특허전쟁으로 대별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모바일 업계에 속속 패자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HP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출시한 태블릿PC '터치패드'와 웹OS 스마트폰 생산라인도 중단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HP는 최근까지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터치패드'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에다 결국 가격까지 100달러 인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앞서 세계 4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도 구글에 인수됐다. 모토로라는 최근 스마트폰과 태블릿PC사업에서 애플에 이어 삼성전자와 HTC 등 경쟁자들에 밀려 어려움을 겪어왔다. 모토로라는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글의 자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따라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 업계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계(OS)를 이용하는 이른바 안드로이드 진영과 애플의 iOS가 양립하고,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노키아가 도전하는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휴대전화업계 세계 1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노키아와 한때 월가의 필수품이었던 블랙베리의 리서치 인 모션(RIM) 등이 M&A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데다 모토로라로 인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분열 가능성 등 아직 지각변동 변수들이 상당수 상존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웹OS가 M&A시장에 나올 경우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자극을 받은 안드로이드 진영 내 HTC 등이 경쟁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T산업 소프트웨어로 권력이동 재확인

    이밖에 HP가 이날 현금 102억 달러를 들여 영국의 오토노미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업계는 HP가 PC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 사업부를 떼어내는 대신 소프트웨어 부문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사실 독일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인 SAP의 사령탑을 역임했던 레오 아포테커가 지난해 10월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된 이후 HP가 전통적인 하드웨어에서 더 작지만 훨씬 수익성이 좋은 소프트웨어 부문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푼드-IT의 애널리스트인 찰스 킹은 "HP의 미래는 법인 하드웨어 부문과 함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면서 "레노버에 PC사업부를 매각했던 IBM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