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총재 “경제 위기 초래 요소 가득”“연준 빅컷 단행, 美 경기 침체 반영” 해석일각선 “단순 경고”… 제조업 지수 등 반등
  • ▲ IMF 본부에서 연설하는 라가르드 ECB 총재.ⓒ연합뉴스(=EPA)
    ▲ IMF 본부에서 연설하는 라가르드 ECB 총재.ⓒ연합뉴스(=EPA)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세계 경제가 1920년대 불황 때와 비슷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글로벌 경기 향방에 시선이 쏠린다.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0일(현지시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연설을 통해 “1920년대와 2020년대 사이에 몇 가지 유사점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계 자유 무역의 약화와 기술 발전 측면에서 두 시대를 비교했다. 그러면서 현재 세계 경제가 경제 민족주의, 세계 무역 붕괴, 대공황을 초래한 1920년대의 압력에 버금가는 ‘균열’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그는 1920년대의 통화 정책이 금본위제를 고수하면서 주요 경제권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과 은행 위기, 경제적 민족주의(국가·지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제 철학)에 빠뜨렸다고 평가했다. 금본위제는 통화의 표준 단위가 금의 일정량의 가치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화폐 제도를 말한다.

    이어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1세기가 지난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 여러 구조적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됐다면서도, 여전히 경제 위기를 초래할 만한 위험 요소가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세계화 후퇴 가능성, 글로벌 공급망의 부분적 붕괴,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이 모두 각국 중앙은행들에 어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혼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상승도 통화 정책을 시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전했다.

    글로벌 경제 불황론이 끊임없이 나오는 가운데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발언은 세계경제가 경제대공황 당시의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보로 해석된다. 

    실제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2020년 3월 이후 4년 반만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한 바 있다. 2020년 당시 연준은 1.75%이던 금리를 0.5%포인트, 1%포인트 두 차례에 걸쳐 깎아 거의 ‘제로 금리’로 만들었다. 경제 비상 상황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금번 빅컷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때처럼 비상 상황도 아니고 뚜렷한 경기 침체 신호가 없는데도 연준이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화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이 금리를 50bp 인하한 것이 고용시장을 포함한 미국 경제 상태가 그만큼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는 주장이다. 

    실제 7월 미국의 실업률은 4.3%로 치솟으며 고용 시장의 둔화를 가시화했다. 연준이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연말까지 실업률이 4%로 완만하게 상승할 것이라 보고 7월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했던 것을 감안하면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수치다. 또한 9월 FOMC에서 연준은 향후 “완전 고용 유지”를 강하게 지원하겠다는 등 7월 성명문에는 없던 문구를 새로 삽입하기도 했다. 

    더불어 데이터트렉의 공동 설립자인 니콜라스 콜라스가 1990년 이후 연준의 금리 인하 주기를 분석해 본 결과 이 기간 중 총 다섯 차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있었다. 그런데 2001년과 2007년 두 차례 모두 연준이 50bp 인하로 사이클을 시작했는데, 곧이어 경기 침체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순 경고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달 들어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반등하는 등 경기 회복 징후가 살아나고 있어서다. 

    해고된 근로자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9월 14일 주 기준 21만9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직전주의 23만1000건과 비교해도 5.2% 줄어든 수치다. 실업 인구도 6월 초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보험 가입 실업자 수, 즉 실업 수당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9월 7일 주 기준 182만9000명을 기록했다. 직전 주 대비 1만4000명 감소한 수치다. 

    제조업도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앞서 16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제조업 조사에 따르면 1년 이상 만에 처음으로 해당 지역의 기업 활동 성장을 보였다. 또한 19일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제조업 기업 전망 조사도 하락세를 벗어나 반등을 본격화했다. 해당 지표는 델라웨어, 뉴저지 남부, 펜실베이니아 중부 및 동부 지역의 제조업 부문 활동을 나타내는 지표다. 

    야데니 리서치의 수석 시장 전략가 에릭 월러스타인은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가 반복된다는 이유로 높은 실업률에 대해 걱정할 수 있다”며 “제조업 업황이 개선되고 있고 실업 데이터가 여름 이전 수준으로 가장 좋으며 연준이 50bp를 인하했다는 데이터를 받았다면 일종의 완벽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