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탈북사회를 빛낸 10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 10, 탈북 미녀들


     "남남북녀"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 주인공들이 있다.
    어느 TV방송의 고정 프로그램 출연자들인 탈북미녀들이다. 그녀들은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여성들이지만 남한사회에 북한인권상황을 확산시키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공헌한 탈북사회의 자랑이다. 특히 그녀들이 전하는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과정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그 어떤 문학이나 영화로도 줄 수 없는 진실의 감동을 주었다. 시청율만이 아니라 탈북자들에 대한 남한사회의 긍정적 인식도 함께 높여주었다.
     

  • 9, 탈북자들의 대부 김용화


    탈북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탈북난민인권연합 사무실이다. 14년 전 18일동안 쪽배에 운명을 맡기고 노를 저어 한국으로 찾아왔지만 당시 한국정부는 ‘불법 입국자’라며 추방을 요구하다 못해 교도소에 수감.  다시 쪽배를 타고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의 수용소에 갇혔던 김용화 대표. 일본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보석으로 가석방된 후 한국에 다시 돌아와 7년 만에 한국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듯 김용화대표의 인생행로는 누구보다도 기구하다. 그래서 지금은 탈북난민인권연합을 만들고 탈북자 구출과 탈북자들의 정착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 김용화 대표와 탈북난민인권연합을 통해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숫자가 무려 6000여명에 달한다. 탈북자들이 붙인 김용화대표의 또 다른 이름은 "탈북자 대부"이다.

     8, 2012년 런던올림픽에 기여한 국가대표 코치 이경희


    태릉선수촌에는 탈북자출신 코치가 있다.
    리듬체조는 개인과 단체를 나눠서 운영하는데 지난해 1월부터 단체팀 코치가 된 이경희 씨이다.
    리듬체조는 남한에 비해 북한이 더 강하다. 이 코치는 북한의 리듬체조의 상징이었다.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대회 리듬체조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유럽 대회에서 동아시아 선수가 리듬체조 3관왕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았다. 북한 정부로부터 최연소 공훈체육인 호칭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체제에 회의심을 느끼고 탈북하여 지금은 남한 리듬체조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 ▲ 북한 선수로 3관왕의 정상에 오르던 당시의 모습(1991, 영국, 유니버시아드
    ▲ 북한 선수로 3관왕의 정상에 오르던 당시의 모습(1991, 영국, 유니버시아드

    7, 탈북청소년들의 어머니 삼흥학교 채경희 교장

    탈북자 채경희 씨는 북한에서 수학 교원을 했다. 탈북 후 통일부 산하 하나원에서 강사로 근무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다른 탈북자 6인과 함께 일괄적으로 계약직에서 해고됐다. 이후 그녀는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만들고 삼흥학교 교장이 됐다.  탈북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 성장발육에 고심한 결과 입소문이 나면서 초기 12명 밖에 안되던 학생들이 지금은 50여명이 넘는다. 

    탈북자들을 위한 대안학교들이 여러개 있지만 누구보다도 탈북자 실정을 잘 알고 친자녀들처럼 아끼는 그녀의 진심에 많은 탈북자 학부형들이 삼흥학교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채경희 교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화법으로 삼흥학교 지원자들을 유치하는데 크게 성공했다. 결과 삼흥학교는 불과 2년 만에 다른 대안학교들에 비해 친환경적이면서도 번듯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교육은 물론 식사나 다양한 현장체험과 같은 최고의 프로그램들로 최근 채경희 교장은 결혼도 안한 싱글이지만 탈북자학부형들로부터 "탈북청소년들의 어머니"로 불리운다.
  •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6, 탈북자 50여명을 채용한 400억 매출기업의 한필수

    2002년 탈북한 한성무역 한필수 대표, 그는 북한에서 탄부로 일했다.
    탈북 후 청계천에서 막노동으로 일하면서 돈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아는 것은 중국말 밖에 없어 무작정 시작한 사업이 한국 샴푸를 중국에 내다파는 것이었다. 1700만원에서 시작하여 7년 만에 320억의 매출을 올렸고, 내년에는 600억 매출을 넘겨다 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한성무역은 대표부터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탈북자인 탈북기업이다.
    직원 숫자는 50여명에 이른다. 한필수 대표는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은 정서적 정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그래서 회사 경영이나 심지어 구내식당 음식도 모두 탈북자들의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것이 한성무역의 이념이라며 한필수 대표는 내년에는 반드시 600억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장담한다.

     5, 세계가 아는 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


    지금까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라고 하면 요덕수용소로 통용됐다. '요덕'에서 나온 탈북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고위간부들 중 요덕수용소에서 혁명화처벌을 받은 경력자들도 많다. 그만큼 '요덕'은 출소가 가능한 수용소식 혁명화구역이다. 북한의 진짜 정치범수용소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살아 못 나오는 곳이다. 바로 그런 정치범 수용소인 14호 개천관리소에서 유일하게 탈출한 생존자가 있다.  1982년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기 부모의 공개처형을 목격하면서도 아무 슬픔을 못느꼈다는 신동혁 씨이다.
  •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2005년 1월 2일 수용소를 탈출하여 한국까지 오게 된 그는 현재 세계가 아는 북한정치범 수용소 생존자가 됐다. 얼마전엔 미국 ‘CBS’ 방송의 인기 시사프로그램인 ‘60 minutes’ 이 북한 14호 개천관리소에서 태어나 자란 뒤 탈출한 신동혁 씨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방영했다.
    45년의 장수 방송인 ‘60 Minutes’ 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으로 매주 1천 3백만 명이 시청하고 있다. 신동혁 씨는 이 방송에 출연하여 북한인권상황을 고발했고 세계는 경악했다.

    올 초 그의 참혹한 이야기를 다룬 책 ‘14호 관리소에서의 탈출’ 이 세계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신동혁 씨는 현재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고 있다.

     4, 국내1위기업을 만들어 낸 신경순
  •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이제는 국내1위기업의 탈북자기업도 있다. 바로 신영무역의 브랜드인 '키즈약밤'이다.
    '키즈약밤'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상을 받았다. 신경순 대표는 2008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여성이다.
    탈북 후 중국에서 숨어지내며 본 것이란 밤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힘들 때 본 것이어서 나의 운명은 밤과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중국말을 조금 알았던 덕분에 2008년 하나원을 나온 후 제일 먼저 가졌던 직업이 통역이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정착금을 털어 시작한 사업이 3년 만에 국내 1위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녀의 성공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는 밤을 판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북한에서 못 먹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이 먹는 가장 소중한 것을 고객들에게 준다는 심정으로 사업한다."고 했다. 밤 수입부터 판매 과정까지 모두 그녀의 눈과 손을 직접 거치는 키즈약밤은 올해에도 소셜커머스 티몬의 TOP 10 상품에 선정됐다.

      3, 돈을 벌어 북한인권 영화를 만든 안동진(가명)


  • ▲ 현장실습을 하는 삼흥학교 학생들, 가운데 앉아있는 채경희교장.
    탈북자기업인들 중에는 북한인권의 사명감을 갖고 영화제작에 거액을 선뜻 투자한 기업인도 있다.
    그의 성공이 더 의미있는 것은 수용소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제학 전공을 마치고 여러 기업들을 거치며 대표이사직까지 맡았던 그의 남한 경력은 화려하다. 안동진 씨는 공식행사나 외부활동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지금까지의 여러 탈북단체들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해왔다.  

    평시 '북한인권을 이념의 호소가 아닌 문화의 호소로 납득시켜야 한다.'고 늘 말하던 그였다. 그 실현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여 올해 9월 장편영화 "48M"를 제작했다. 두만강의 '48M'에 얽힌 탈북자들의 운명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내년 1월 경 미국과 유럽 국회에서부터 시작되어 개봉될 예정이다.

      2, 탈북단체 연대를 이끌어 낸 '북민연' 대표 김성민


     황장엽선생 사망 이후 탈북단체들의 단결과 연대가 더 절실해졌다. 20여개가 넘는 탈북단체장들은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를 출범시키고 대표로 자유북한방송국 김성민 국장을 선출했다. 박근혜 당선자가 대선 후보 시절 '북민연'출범식에 자필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북한은 올해에도 몇 번이나 김성민 대표에 대한 테러를 공개화했다.

  • ▲ 김성민 대표와 부시 미국대통령.
    ▲ 김성민 대표와 부시 미국대통령.

    황장엽선생의 최측근이었던 김성민 대표는 북한인권운동의 선구자이다.
    2006년 미국 부시대통령과 만났던 김성민 대표는 2008년에는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 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가 시상하는 '올해의 매체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2009 아시아 민주인권상'  받았다.  해마다 열리는 북한인권행사에서 서울 평화상 수상자인 수쟌 솔티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김성민 대표는 올해 '북민연' 출범과 활동을 통해 탈북단체운동의 발전에 다시 한번 큰 획을 그었다.

  • ▲ 눈물 짓는 조명철 의원, 한국 최초의 탈북자 국회의원.
    ▲ 눈물 짓는 조명철 의원, 한국 최초의 탈북자 국회의원.
    1, 탈북자출신 첫 국회의원 조명철


     드디어 탈북자출신 첫 국회의원이 배출됐다. 올 해 탈북사회를 빛낸 최고의 스타 조명철의원이다.
    조의원은 북한에서 탈출하여 대외경제연구원, 통일교육원 원장을 거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조명철 의원은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답게 비서들을 탈북자 출신들로 고용했다.

    탈북자들은 조 의원의 국회입성에 매우 자부심을 느끼며 임기 기간 북한인권과 탈북자 정착에 많은 기여를 해 줄 것을 기대한다.  북한은 조명철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며 테러 의사를 밝힌 상태, 이에 대해 조의원은 '무시한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방향에는 변함없음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