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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서 20억달러 규모의 특허 배상금을 요구한 애플이 전문가를 동원해 삼성에 대한 배상 논리를 펴기 시작했으나, 초반부터 무리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고객들의 요구를 맞춤형으로 반영하면서 수많은 종류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전략으로 고객들을 넓혀간 반면 애플은 시장에서 안정성이 확인된 소수의 제품만을 고집해 고객들을 잠식당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양사의 승패 전략이었다.그러나 애플은 시장 축소의 원인을 모두 삼성전자에 돌리는 논리로 배심원단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특허에 대해 타 기업에 요구했던 금액의 20배 이상을 삼성에 요구하는 등 무리한 요구로 미국, 유럽 전문가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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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8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속개된 특허 소송에서 배상금 21억9,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이날 애플 측은 전문가들을 등장시켜 배상액 요구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애플 측 증인으로 등장한 인물은 손해사정 전문가인 크리스 벨투로 박사와 존 하우저 교수. MIT 경제학 박사 출신인 벨투로는 현재 컨설팅업체인 퀀티터티브 이코노믹 솔루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애플은 삼성이 2011년 8월부터 지난 해 말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특허 침해 제품 3,700만대 가량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단순 비교할 경우 삼성 기기 한 대당 60달러 가량의 배상금을 요구한 셈이다.
애플은 피해 배상액 산정 기준에 대해 (1)합리적 로열티 (2)잃어버린 수익 두 가지를 합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로열티의 경우 이미 삼성이 재판 시작 전부터 강하게 문제 제기한 부분이다. 삼성 측 스캇 왓슨 변호사는 지난 1월 루시 고 판사 주재로 열린 재판 전 사전 모임에서 “애플이 데이터 태핑 특허(647특허) 관련 피해보상액으로 12.49달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애플이 모토로라에 요구했던 0.60달러의 20배가 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 운영자인 플로리언 뮐러는 “애플이 모토롤라에 요구했던 0.60달러조차 2012년 재판을 담당했던 포스너 판사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일축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포스너 판사가 이번 재판을 담당했더라면 애플 요구액의 10분의 1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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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 사이트인 더버지 역시 애플의 로열티 요구가 과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버지는 이번 재판 시작 전 “삼성이 애플 요구대로 10% 로열티를 지급할 경우 연간 12억8,000만 달러에 이른다”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안드로이드 진영에 받은 로열티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MS는 현재 안드로이드 폰 한 대당 7.50~15달러 가량의 로열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에선 MS 로열티가 대당 5달러 수준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특히 MS의 로열티는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권에 대해 포괄적으로 적용한 금액이다. 반면 애플은 이번 소송에서 특허권 다섯개에 대해서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단순계산하더라도 애플은 특허권 한 개당 4억5,000만 달러 가량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이 두 번째 기준으로 제시한 ‘잃어버린 수익’ 역시 논란이 예상된다. 애플 측이 동원한 하우저 교수는 이번 증언을 위해 스마트폰 이용자 507명, 태블릿 이용자 4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입행태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우저 교수는 데이터 태핑, 밀어서 잠금해제, 단어 자동 완성 같은 특허 기술 뿐 아니라 화면 크기, 카메라, 와이파이, GPS 등 21개 기능별로 나눠 수요 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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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특허 침해가 곧바로 삼성 제품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는 주장인 셈이다. 하우저는 이날 증언에서 “소비자들은 통합검색, 단어 자동완성, 밀어서 잠금해제 등의 기능을 위해 32~102달러까지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측은 하우저 교수의 방법론 자체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 빌 프라이스 변호사는 “스마트폰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브랜드와 운영체제”라고 반박했다. 잠금 해제 같은 특정 기능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적다는 주장인 셈이다.
물론 삼성은 애플 특허권 자체를 침해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설사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하더라도 애플 측이 산정한 피해액이 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럿거스대학 법과대학 마이클 캐리어 교수가 ‘애플이 초반부터 자신들의 의도대로 재판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미국내 법률, IT 전문가들 가운데 애플의 무리한 배상 요구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