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5년만, 유통화폐 잔액 3분의2 차지'지하경제' 수단 전락 우려

  • 대한민국 최고액 화폐인 5만원권이 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09년 6월 23일 처음 유통되기 시작한 5만원권은 발행 5년만에 시중 유통화폐 잔액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그 존재감을 굳혀가고 있다.

5만원권의 탄생으로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발행이 줄어드는 등 화폐의 제조·유통 비용 절감 측면에서 확실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환수율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면서, '검은 돈'으로 변신해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기는 등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 시중에 풀린 화폐 '3분의 2' 5만원권… 흥행 '성공'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발행 첫해인 2009년말 5만원권의 시중 발행 잔액은 9조9230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2010년 18조9962억원, 2011년 25조9603억원, 2012년 32조7665억원, 2013년 40조6812억원 등 한해 7조∼8조원 규모로 늘었다.

이에 따라 시중에 풀린 화폐(기념주화 제외) 중 5만원권의 연말 발행잔액 비중은 2009년 26.6%, 2010년 43.9%, 2011년 53.3%, 2012년 60.3%, 2013년 64.2%로 높아졌다.

올해 4월말에는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이 43조8510억원으로, 전체 화폐 잔액의 65.9%를 차지했다.

국내 화폐 구성의 지각 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은 장수로는 8억7702만장으로, 1인당 17.8장 가량 보급돼 있는 셈이다.

5만원권 발행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감소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는 5만원권이 발행되기 전인 2008년 하루 평균 결제규모가 374만2000건에 달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307만3000건으로 전년보다 17.9% 줄어든 것을 비롯해 매년 감소폭이 커져 지난해에는 112만9000건(1129억원)에 그쳤다.

애초 고액권인 5만원권을 도입한 취지가 은행권의 제조 및 유통비용 절감, 국민의 화폐사용 편의 제고 등인 만큼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셈이다. 

◇ 환수율 절반 못미쳐… 나머지는 어디로?

5만원권이 나올 때부터 음성 거래 등 지하경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차떼기'에 사용된 사과상자를 1만원권으로 채울 경우 약 5억원, '007가방'에는 약 1억원이 들어갔다. 1만원권을 5만원권으로 대체하면 다섯 배로 증액이 가능해진다. 사과상자에는 25억원, 007가방에는 5억원까지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 1억원을 전달하려면 007가방 1개가 필요했지만 5만원권을 사용하면 양주 박스 1개로도 가능해지는 셈이다.

지난해에도 지하경제 수단으로서 5만원권이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5만원권의 환수율 하락, 개인금고 시장의 확대 등 지하경제 확산을 의심케 하는 정황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5만원권 환수율은 발행 첫해인 2009년 7.3%에 그쳤지만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다가 지난해 48.6%로 뚝 떨어졌다.

이와 관련,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액권 중심의 화폐 수요 증가는 주요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한은은 지난 3월 발표한 연차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강화되고 저금리로 화폐 보유성향이 높아진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5만원권의 증가 원인을 추정했다. 단 지하경제 부문은 분석이 어렵고 과학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원인만 들여다본 평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비슷한 황색 계통인 5만원권과 5천원권과의 혼동 등 크고 작은 문제도 있다.

5천원권인 줄 알고 5만원권을 냈다가 거스름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는 불만섞인 민원은 아직도 한은에 간간이 접수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그림을 보고 돈을 구별하므로, 여성인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은 오히려 혼동이 적다"며 "혼동을 막기 위해 5만원권은 가로 길이를 5천원권보다 12㎜ 더 길게 만드는 등 세심하게 도안했다"고 말했다.